• 6장 단련 ③  

     아카마스는 불온 조선인 색출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앞잡이로 세웠던 김윤정이 숨어서 미국 대륙을 횡단하여 조선으로 돌아간 터라 이제 제 손에 직접 피를 묻혀야만 했다.
    김윤정은 서양 여자 차림을 하고 배를 탔다는 소문이 났다.

    4월 초, 내가 일하는 식당의 주방 보조 우든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서둘러 돌아왔다. 우든은 흑인으로 나와 친하다.

    「리, 뒷문에서 왠 동양 여자가 찾아.」

    놀란 내가 뒷문으로 나갔더니 하루코가 서 있었다. 오후 6시쯤 되어서 바쁜 시간이다. 뒤쪽의 좁은 골목길에도 오가는 행인이 많다.

    나를 본 하루코가 한걸음 다가와 서며 말했다.
    「선생님, 내일 오전에 학교로 사람들이 찾아갈 것입니다. 그걸 말씀 드리려고 왔어요.」

    하루코의 조선말이 선명하게 내 귀속으로 울렸다.
    오랜만에 듣는 여자의 조선말이다. 그러나 하루코는 조선 여자는 아니다. 백제계의 일본인. 하루코는 내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아카마스가 습격을 받은 후부터 였으니 서너달은 된 것 같다.

    하루코가 말을 이었다.
    「공사관 직원들이 신분증 문제로 미국 경찰과 함께 간다고 해요. 선생님 신분 확인을 하고 추방 시킬지도 모릅니다.」
    「고마워. 하루코.」
    그때서야 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공사관에 가지 않았다. 오병한 등은 망명 신청을 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 나머지는 모두 일본 공사관에서 새로 발급된 신분증을 받았다.

    길게 숨을 뱉은 내가 이제는 눈의 초점을 잡고 하루코를 보았다.
    「아버님이 그렇게 전하라고 하시던가?」
    「아닙니다.」

    머리를 저은 하루코의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제가 혼자 왔습니다.」
    「그럼 하루코가 어떻게 공사관 일을 알지?」
    「아버지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아카마스가 엿듣도록 했을 것이다.

    뒤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나는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하루코, 나는 앞으로도 대한제국인으로 지낼거야.」

    하루코가 뭐라고 말할 듯이 입을 벌렸지만 나는 문을 열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하루코의 크게 뜬 눈이 눈 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에 나는 쌓아놓은 그릇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하루코가 말한대로 일본인 두 명과 경찰 두 명이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학생 신분이어서 그들은 먼저 학장인 찰스 니덤(Charles Needham)을 만나야만 했다.

    학장실로 안내 된 일본인들이 용건을 말했을 때 니덤이 잠자코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이 이승만을 졸업할 때까지 보호 하겠다는 서류에 주지사와 국무장관 그리고 연방의원 여섯 명의 보증을 받아놓았소. 자, 어쩌시겠소?」

    당황한 일본인들이 서류를 드려다 보기만 했을 때 니덤이 말을 이었다.
    「아마 이 서류를 무효화 시키려면 당신들이 작년에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을 무효화 시키는 것 보다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이건 미국 국가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일이거든요.」

    「학장님, 이승만은 일본국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한제국인으로...」
    하고 일본인 하나가 입을 열었을 때 니덤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서류의 내 이름을 가리켰다.
    「우리는 이승만을 이야기 한 겁니다. 그가 어느 교회 소속이건 상관없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