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의 악의 없음을 피해자가 증명하라는 판사들사찰여부 핵심 외면...편견과 특정의도 가진 듯
  •          국정원 대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사건에 대해 지난 9월 15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판결은 한마디로 말해서 기교판결(技巧判決)이라 해도 반박하기 어려울 부당한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은 그 사건 판결에서 피고 박원순씨가 국정원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정원의 패소를 선언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는 다음과 같은 3 가지 치명적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 

  • ▲ 박원순 희망제작소이사.
    ▲ 박원순 희망제작소이사.

    첫째 오류는 국가가 원칙적으로 개별 국민을 상대로 하여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전제한 점이다.  

    국민이 국가에 완전히 예속된 전체주의국가에서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국가와 개별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개별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별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듯이 국가도 원칙적으로 개별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 다만 국가 혹은 국가기관은 개별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을 국민의 언론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자제해야 할 뿐이다.  

    따라서 국가나 국가기관이 국민의 광범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므로 원칙적으로 명예훼손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한 재판부의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둘째 오류는 재판부가 그 사건의 핵심쟁점인 피고 박원순씨의 발언 내용의 진위여부를 중심으로 판결하지 않고, 소송 대상이 된 발언과 관련된 피고의 내심의 의도를 중심으로 판결한 점이다.  

    이 사건은 피고 박원순씨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민간기업을 사찰했다’고 말한 데서부터 발단했다. 국정원은 피고의 그 발언은 허위사실이며, 그러한 허위사실 유포로 국정원의 명예가 훼손되었음으로 피고는 명예훼손의 피해를 2억 원의 금전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핵심쟁점은 ‘국정원이 민간기업을 사찰했다’는 피고의 발언 내용이 진실인지 여부와 그 발언내용이 거짓일 경우 그런 허위사실 유포로 국정원이 입게 된 명예훼손의 피해가 금전적으로 계산할 때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이다. 국정원이 민간기업을 사찰하지 하지 않았다면 피고의 패소를 선언해야 하고, 피고의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국정원의 명예훼손 피해가 금전적으로 계산하여 2억 원을 초과한다면 피고가 그 금액을 보상하도록 판결해야 할 것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피고의 발언내용의 진실여부를 중심으로 판결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피고가 그런 발언을 함에 있어서 내심으로 악의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결을 한 것은 해괴하기 그지없다.  

    셋째 오류는 피고가 그런 발언을 함에 있어서 ‘현저히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원고가 증명해야 한다’고 해설하면서 피고는 ‘악의가 없었다’고 판단하여 원고 패소를 판결한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국정원 대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을 재판함에 있어서 피고 박원순씨의 발언의 진실여부를 중심으로 재판하지 않고 그런 발언을 함에 있어서 피고가 내심으로 악의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재판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백보를 양보하여 그런 재판부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런 악의 존재를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고 해설한 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형사법상 범죄구성요건에 혐의자의 범행의도를 적극적으로 규정한 범죄와 관련된 재판에 있어서는 혐의자의 범행의도를 기소자인 원고, 즉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범죄혐의자에 대한 재판에 있어서는 혐의자의 ‘악의 없음’(곧, 범죄의도 부재)은 범죄혐의자가 입증해야 한다.

    ‘악의 없음’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혐의자의 범죄사실이 확인된 후, 혐의자에 대한 처벌을 함에 있어서 처벌의 형량을 경감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인 혐의자가 자신의 살인범행 사실이 확인된 후 살인죄에 대한 처벌형량의 경감을 호소하려면 자기가 범행 당시 살해의도가 없었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피고의 ‘악의 있음’을 원고가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원고가 ‘악의 있음’을 증명하지 못했음으로 피고는 ‘악의 없었다’고 판단하여 원고 패소를 선언한 것은 법률에 충실한 법관들이라면 취하기 어려운 황당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이 국정원 대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사건에 관한 판결을 함에 있어서 이상과 같은 치명적 오류 3가지를 연계하여 범한 것은 담당 판사들이 모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연수를 거쳐 판사직을 수행해온 법관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해하기 극히 곤란한 사항이다.

    판사로서의 기본학습이 된 법관들이 비법조인이라도 인지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한 판결을 한 것은 그들이 담당사건의 원고와 피고에 대한 어떤 강한 편견을 가졌거나 사건의 판결에 관한 특정 의도를 가지고 판결의 논리를 구성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