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 Lucy 이야기 ③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배재학당은 내가 묵는 호텔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다.
    나는 고지훈의 안내를 받아 배재학당을 둘러보았다. 평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관람객은 우리 포함해서 서너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층 전시실에 올랐을 때는 우리 둘 뿐이었다.

    「초대 대통령이 신문명을 처음 깨우친 역사적인 장소인데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녜요?」
    둘 뿐이었으므로 벽에 붙여진 사진 속 인물들을 둘러보면서 내가 커다랗게 말했다. 목소리가 빈 이층에 울렸다.

    「하긴 나도 여긴 처음입니다.」
    쓴 웃음을 지은 고지훈이 내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배재학당은 내가 고지훈한테 안내 해달라고 해서 온 것이다.

    「건국 대통령 동상 하나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고지훈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나는 들었다.

    내 시선을 받은 고지훈이 말을 잇는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독재자라구요?」
    「남북 분단의 원흉, 미국의 앞잡이.」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한 고지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누가요?」
    「지난 정권에서 건국을 부정하는 무리가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 얼굴에 대고 침을 뱉는 격이었군요.」
    내가 무심코 뱉았지만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이승만에 대해서 다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고지훈이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정색한 얼굴이다.
    「그렇습니다. 바로잡아야 됩니다.」
    고지훈이 말을 잇는다.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세웠습니다.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호흡을 가눈 고지훈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두 눈이 치켜 떠져있다.
    「만일에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공산화 되어서 지금도 김씨 왕조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국 대통령의 동상 하나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쓴웃음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줄줄이 근본없는 인간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북한은 휴전 상황이죠.」
    내 기색을 살핀 고지훈이 혼잣소리처럼 말하더니 발을 떼었다.
    「휴전 상태로 60년 가깝게 되었네요.」

    나는 잠자코 고지훈을 따라 이층 계단을 내려왔다. 아마 근세사에 이처럼 긴 휴전 기간은 이곳이 처음인 것 같다.

    배제학당 현관을 나왔을 때 가방 안에 든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 보았더니 김태수다. 핸드폰을 귀에 붙이자 고지훈은 예의 바르게 몇걸음 떨어져서 기다렸다.

    「테드, 나 관광하고 있어.」

    어젯밤에 조상들의 사연을 들은 김태수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었다.
    내가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인간사는 수많은 인연으로 엉켜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인연없는 인간은 없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서에서 대의를 세우려면 포용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것이다.
    김태수는 자신의 조부가 어떻게 포용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 김태수가 말했다.
    「루시, 이승만 전기를 나에게 보여줄 수 있어? 부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