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숍 안으로 들어서는 오연희를 본 순간 정기철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오후 6시 반, 논현동의 오피스텔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남녀 손님들이 커피숍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연희가 정기철을 보더니 입 끝에 희미한 웃음기를 떠올리며 다가왔다. 당당한 걸음, 시선도 똑바로 이쪽에 향해져 있다.

    앞쪽 자리에 앉으면서 오연희가 물었다.
    「귀대 며칠 남았어요?」
    「사흘요.」
    「바쁘겠네.」
    「그러네요.」

    여기까지 주고받는 말이 거침없이 나왔지만 그 다음부터는 뚝 끊겼다. 그래서 둘은 서로 쳐다만 보다가 거의 동시에 베시시 웃는다.

    「거기 몇 살이죠?」
    하고 오연희가 물었으므로 정기철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한다.
    「스물둘요.」
    「난 스물셋. 내가 누나네.」
    「걸려요?」
    「아니. 난 상관 없어요.」
    「누나라고 불러줄까요?」
    「싫어.」
    「내가 말 내리면 싫을텐데.」
    「하긴 그러네.」
    「그럼 누나 붙이고 내릴게.」
    「당분간 그래봐.」
    「그럼 먼저 밥 먹으러 가자, 누나.」
    「그래, 난 그냥 일어날게.」
    하고 오연희가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커피는 정기철 혼자만 마신 셈이 되었다.

    커피숍을 나온 둘은 근처의 돼지갈비집으로 들어가 갈비와 술을 시킨다.

    「이쪽은 내 바운다리야. 이 집 맛있어.」
    오연희가 생기 띤 얼굴로 말했다. 만난 지 10분밖에 안되었지만 1년쯤 만난 사이 같다. 오연희 회사가 이 근처인 것이다.

    「내 주량은 소주 한병 반이야. 넌?」
    「난, 글쎄.」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던 정기철이 말을 이었다.
    「열병이라고 해두지.」
    「머어?」

    눈을 가늘게 뜬 오연희가 정기철을 노려보았다.
    「야, 물을 그만큼 마셔도 오바이트 하겠다. 뻥까지마.」
    「스무병까지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오바이트 안했어.」
    「일주일동안 스무병?」
    「아니, 하룻밤.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미쳤어.」
    「그리고나서 오후에 강의 받으러 갔는데.」
    「사람이 아냐.」
    「누난 애인 있어?」
    「야, 있으면 내가 이러고 너 만나고 있겠냐?」

    그때 시킨 갈비가 나왔으므로 둘은 입을 다물었다. 종업원이 찬과 고기를 벌려놓는 동안 정기철은 오연희를 보았다. 여전히 맑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생기가 차있다. 단정한 입술과 콧날, 처음 보았을 때는 차가워보였던 인상이 오늘은 따뜻하다.

    「왜 그렇게 보는거야?」
    눈치를 못챈 줄 알았더니 오연희가 불쑥 묻는 바람에 정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누나 모습이 독특해.」
    「그로테스크 하단거야?」
    「아냐, 개성있어.」
    「칭찬으로 알겠다.」

    술잔을 쥔 오연희가 따르라는 듯이 앞으로 내밀었다.
    「자, 마시자. 쫄병.」

    정기철은 잠자코 잔에 술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