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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총장의 ‘비교대학론'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서울대는 일제 때의 관립대학, 연세대 이화대는 미션 스쿨, 고려대는 민족대학이라고 말했다 해서 논란을 빚었다. 고려대가 민족대학임을 자부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고 그것은 한국인 모두가 함께 자랑할 만한 큰 자산이다.
연세대가 미션 스쿨이었다면 연세교육은 근대정신의 한 에너지인 프로테스탄티슴 윤리와 시장경제적 이윤동기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학문적으로 연마하고 전파하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민족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학이 일제가 설립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민족문화를 왜곡 시키고 폄하하고 인멸하려 한 식민지적 작업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성대학의 후예인 서울대학은 경성대학의 긍정할 만한 부분의 학문적 성과와 연구실적을 딛고 서서 그것을 초극하려 한 훗날의 독립한국의 새로운 고급 민족 엘리트를 길러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우리의 자랑이다.
이화대학 역시 미션 스쿨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오늘의 이화대학은 대한민국 최고 여성 지도자 배출의 선두에서 미션 사명 뿐만 아니라 종합 학문 연찬에 있어서도 민족의 큰 보물이 되어 있다. 민족주의, 서구주의, 식민지 때 생긴 경성대학적 학풍-이 모두가 세월이 지나면서는 대한민국의 대학으로서, 대한민국 엘리트를 충원해서, 대한민국의 학계, 대한민국의 국가 엘리트, 대한민국의 산업 엘리트를 양산하는 같은 목적에 봉사해 왔다. 그러니 이제 엣날의 다른 출생설화(說話)보다는 오늘의 같은 역할에 더 주목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고려대에도 국제파가 있을 것이고, 연세대에도 민족파가 있을 것이며, 서울대에도 주류 아닌 비주류로 나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고려대가 민족파이면 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할 것이고, 연세대에 국제파가 많으면 그들은 한국의 대외 진출에 훌륭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서울대가 관립인 한에는 국가경영의 많은 인재를 길러낼 터이니 그 역시 좋은 일이다.
학교는 같아선 안 된다. 서로 달라야 한다. 민족파, 해외파, 관료적 주류가 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차별성을 우월성으로 표출하거나, 다른 측을 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기수 총장이 설마 그렇게 말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류근일 /본사고문,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