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22) 

     스미스씨 집으로 돌아온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이 되어 민영환 앞으로 편지를 썼다.
    김윤정이 아카마스의 개가 되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그 현실에 부딪치자 충격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개혁 운동을 하는 동안 매국노를 여럿 보았지만 김윤정같은 반역도(叛逆徒)는 처음이다.
    아직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았는데도 일국의 공사라는 놈이 황제와 인민의 열망이 담긴 일을 적국의 편에 서서 당당하게 거부한단 말인가?
    김윤정은 역적이다. 내가 말했듯이 후세까지 그 죄과가 이어질 것이었다.

    민영환에게 상황을 설명한 편지를 마쳤을 때 김일국이 들어섰다.
    방 안에는 나와 윤병기, 서재필과 독립당 회원 서너명이 모여 있었는데 아직도 울분은 가셔지지 않아서 격앙된 분위기였다.

    김일국이 선채로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후 7시 반쯤에 공사관으로 일본국 대리공사 히오키가 찾아왔습니다.」
    좌중은 숨을 죽였고 김일국의 말이 이어졌다.
    「히오키는 공사관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청원서 전달을 거부한 김윤정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자마자 김윤정은 국무부로 보낼 청원서를 가져온 사실을 일본측에 보고 한 것이다.

    「그 놈을 죽여야 해!」
    독립당 회원들이 주먹을 흔들며 소리쳤고 윤병구는 이를 갈았다.

    그때 김일국이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카마스 영사도 같이 왔더군요. 김윤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카마스는 일본인이야.」

    나에게 호의를 보였지만 아카마스의 조국은 일본인 것이다. 나는 아카마스를 믿지 않았고 그 또한 그 사실을 알 것이었다.

    내가 민영환 앞으로 쓴 편지를 김일국에게 주면서 말했다.
    「내일 귀국한다는 유학생 김진구에게 이 편지를 주게. 민대감한테 직접 전하라고 하게. 편지를 받으면 민대감이 후사 할 것일세.」
    「그러지요.」

    편지를 받아 가슴속에 넣은 김일국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자국(自國) 대신께 보내는 공식 편지를 대사관 행낭편으로 보내지 못하고 유학생이 숨겨 들고 가다니요.」

    「이미 대한제국은 망했네.」
    그 말을 들은 윤병구가 뱉듯이 말하고는 주르르 눈물을 쏟았다.
    「황제란 작자가 제 앞가림만 하다가 조선 땅을 일본놈 입에 처넣어 준걸세.」  

    「내가 김윤정에게 편지를 보내겠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서재필이 말했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그자가 내 말은 무시하지 못할 걸세.」

    서재필은 필라델피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미국 시민이니 김윤정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작년만 해도 김윤정은 미국에서 채용된 서기생이라는 말직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일으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재필이 말을 잇는다.
    「김윤정에게 그대들을 국무장관에게 소개시키는 소개장을 써주라고 부탁하겠네. 그러면 일본놈들도 꼬투리를 잡지 못할 것 아닌가? 청원서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잡아떼면 될테니까 말일세.」

    「교묘합니다.」
    독립당 회원 하나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감탄했고 방안이 술렁거렸다.

    서재필이 나를 보았다.
    「우남,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순간 나는 서재필의 순진함에 목이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