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족 화해는 일본 天皇이 주도하라.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의 레토릭에 또 한번 휘둘리는 일이 벌어졌다.
    보도에 있듯이 ‘병합’ 100년인 올해가 역사의 큰 매듭이라고, 일본의 간 나오토(管直人) 총리가 식민지배 관련 역사인식을 10일 담화로 발표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 언론들이 간(管) 총리의 의도를 희망사항 쪽으로 확장해서 읽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총리는 좀 민망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일본 총리, '강제성' 인정 안했다

    신문들은 하나같이, 일본총리 담화로서는 처음으로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했다고 하고 있다.
    ‘식민지배의 강제성’이라고 읽게하는 담화 본문의 구절은 “당시의 한국 사람들은, 그 뜻에 반해 행해진 식민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이다. 그 중에서도 “… 그 뜻에 반(反)해 행해진 식민지배에 의해”가 ‘식민지배의 강제성’으르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 같다. 그것 말고는 ‘강제성’을 해석할 데가 없다.

    '강제성 인정'  운운은 중대한 오역 때문
    '行われた'→'이뤄졌다' 오역...'행해졌다'로 해야

    ‘그 뜻에 반해 행해진 식민지배’의 의미는 식민지배 자체가 한국사람들 뜻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 뜻과 다르다는 것, 반대하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식민지배 내지 통치의 강제성은 원래부터 공개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것이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천황이 직접 임명하는 제국 군대의 현역 대장이 헌법을 적용하지 않고 천황대권으로 헌병경찰을 써서 하는 통치가 식민지배였다. 인정하고 말 것도 없는 드러내 놓은 강제성이었다.
    한국 신문들이 일본총리가 처음으로 그 강제성을 인정했다 했을 때의 ‘식민지배’는 일상의 구체적 지배가 아니라, ‘식민지배를 있게 한 결정’을 말하는 것이라면 ‘식민지배의 강제성’은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담화는 벌써 둘째 문장에서 ‘정확히 100년전 8월, 일한 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고 전제하고 시작했다. 아무 수식어나 단서 없이 너무도 당연히 의심의 여지 없이 ‘병합조약이 체결되어’라고 하고 있다. 이 병합조약이 식민지배를 있게 한 것이다. 병합조약의 강제성을 인정치 않는 간(管)총리가 ‘식민지배의 근거’가 강제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뜻으로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얘기했을리는 없다. 형용사 없는 ‘병합조약’으로 간(管)총리의 의지가 착오의 소지는 미리 막아 놓았던 것이다.

    죄인이 죄의 주체적 고백 없이 '피동형' 말장난만

    신문들이 간(管) 담화에서 또하나 평가하는 대목은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 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이다.
    무라야마(村山), 고이즈미(小泉) 등 몇 수상이 심심찮게 사죄를 입에 올리게 되었으니, 일본도 사죄문화와 무연한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원래 사죄란 죄행의 주체가 죄를 고백하고 신의 사함을 구하듯, 상대의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상대가 당한 고통이나 손해가 사죄의 대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간(管)총리는 담화에서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히 임하고자 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 보는데 솔직하게 임하고자 합니다.”라 했다. 

    이는 독일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패전 40주년에 행한 유명한 참회연설 속의 ‘과거에 대해 눈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도 맹목으로 된다.’와 같은 수준이다. 이 같은 자세는 오늘의 100년 역사의 ‘큰매듭’을 한-일 양민족의 영시(零時)로 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영시란 독•불 양민족이 이 시점을 기점으로 오랜 역사의 적의(敵意)를 영원히 과거의 것으로 해버렸던 것이다. 그때에 ‘역사를 직시’한 아데나워 수상에게 선견의 명이 있었다.

    '역사 직시' 한다면 '백년 매듭'에 화해해야

    ‘영시’란 양민족이 사물을 새로 시작하는 영시이고, 밝은 미래의 전망을 열어젖히는 영시이다.
    영시는 독불 양민족의 마음으로부터의 화해 다음에 왔다.
    바이츠제커는 마음에 새기려 들지 않고는 화해는 없다고 ‘마음에 새기다’를 처음부터 강조했다. 마음에 새기기를 강조한 대상은 독일이 과거에 저지른 비인도적, 비인간적 행위였다. 인간 멸시의 체제, 폭력지배의 체제 하에서 있었던 일을 마음에 새기기를 강조했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잊기 쉽다는 식으로 잊어 버리려 든다면 화해의 싹을 따버리는 것이라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인간의 존엄에 대한 멈출줄 몰랐던 모독을 일본인들은 지금 한번 마음에 새길수 있는가. 전차간에 흰두루마기 입고 갓 쓰고 앉아 있는 조선 노인을 일본군인병졸이, 일어나 자리 비키라 하고 갓을 벗겨 써보는 짓이 그때 서울에 흔했다. 일본서 온 외교공관의 대표라는 자가 서울 바닥에 와 있던 일본의 외교요원, 신문기자, 상인, 껄렁패, 경찰, 군인들을 끌고 야밤에 주재국의 왕궁에 쳐들어가 그나라 왕비를 침실에 들이닥쳐 참살하는 짓은, 세계에 외교라는 것이 생겨 난 후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역사를 직시한다 했을 때 이 일부터 직시하지 않고는 화해는 공염불일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일본신도의 신사를 참배케 하는 일과, 사람의 성과 이름을 바꾸게 하는 창씨개명이 얼마나 조선사람을 오욕의 늪에 끌어 넣는 일이었던가를, 진짜 화해를 하려면, 그리고 동아(東亞)의 전략적 영점(零点)에 함께 서고자 한다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바이츠제커는 알려주고 있다.
    독립의 신념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의병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 3.1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 그리고 관동대진재 때 조선사람이라고 학살된 사람들, 그리고 간도학살. 그리고 이 모든 학살과 죽음 옆에 따르는 ‘비탄의 산맥’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죽은자의 일가, 친척, 친지의 비탄의 고통은 죽음의 고통보다도 더 크다는 것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인도에 관한 죄' 마음에 새겨야 화해는 출발한다

    그리고 종군위안부에 가한 소화군국주의의 모멸과 오욕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강제징용이라는 전쟁노예노동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마음에 새기는 일 없이 화해작업은 출발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는 바이츠제커를 잊을 수는 없다. 그러면 사죄든 참회든 일본서 누가 이 일을 주도해야, 일본민족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하고, 한일 양민족의 영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천황이다. 현실의 정치 권력자는 수상이지만, 이번 담화만 해도, 정치권의 보수세 모두가 반발했다니까, 짐작컨대 일본국민 다수는 이 일을 가지고는 수상에 동조하기를 꺼릴지도 모른다. 그래가지고는 양민족의 화해란 빈말일 뿐이다. 찬성이건 반대건 일본국민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천황 뿐일 것이다. 쉬 자주오지 않는 이 100년의 매듭을 화해의 영시의 출발점이게 하고자 한다면 천황의 주도를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배는 천황의 직활체제...천황이 최종책임 져야

    2차대전의 전후처리에서 미국의 큰 실수 하나가 있다. 아무도 따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 점령정치 손쉽게 하려고, 천황의 전책책임을 묻지 않은것이다. 천황이 패전을 받아 들였기 때문, 본토결전을 하려던 일본 사람 누구도 반발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미국 판단이 맞았다. 그러나 일본 최고의 전쟁 책임자인 천황의 전쟁책임을 묻지 않으므로서, 이후 일본은 나라의 덩치에 걸맞는 국제책임을 수행 못하는 어리광(아마에•甘え) 국가가 되고 말았다.
    식민지배 책임을 자각해서 의미가 있는 사람도 천황 뿐이다. ‘한일 강제 병합’ 조약에서 조선의 황제가 나라를 양도한 대상은 일본 천황이었기 때문이다.
    천황이 주도하는 한일 양민족의 화해의 영점을 이 100년에 기대해 마지 않는다.

    <참조> 한국 외교부 번역문 및 일본 간총리 담화문 비교

    -한국 외교부 번역 발표문-
    "금년은 일한관계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일한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여기에 또다시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 향후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일한관계를 구축해 갈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실시해 온, 이른바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 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금후에도 성실히 실시해 갈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되어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반환하고자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2,000년에 걸친 활발한 문화 교류 및 인적 왕래를 통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깊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양국의 교류는 매우 중층적이며 광범위하고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게 느끼는 친근감과 우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양국의 경제관계 및 인적교류의 규모는 국교정상화 이래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서로 절차탁마하면서 그 결합은 극히 공고해졌습니다.

    일한 양국은 이제 금번 21세기에 있어서 민주주의 및 자유,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하며 긴밀한 이웃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는 양국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래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염두에 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세계경제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핵군축 및 기후변화, 빈곤 및 평화구축 등과 같은 지구규모의 과제까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폭넓게 협력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파트너 관계입니다.

    저는 이러한 커다란 역사의 전환점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유대가 보다 깊고, 더 확고해지는 것을 강하게 희구함과 동시에, 양국간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결의를 표명합니다."

    -다음은 일본어 全文 (수상관저 홈페이지 게재).

    内閣総理大臣談話
    平成二十二年八月十日

     本年は、日韓関係にとって大きな節目の年です。ちょうど百年前の八月、日韓併合条約が締結され、以後三十六年に及ぶ植民地支配が始まりました。三・一独立運動などの激しい抵抗にも示されたとおり、政治的・軍事的背景の下、当時の韓国の人々は、その意に反して 行われた 植民地支配によって、国と文化を奪われ、民族の誇りを深く傷付けられました。

     私は、歴史に対して誠実に向き合いたいと思います。歴史の事実を直視する勇気とそれを受け止める謙虚さを持ち、自らの過ちを省みることに率直でありたいと思います。痛みを与えた側は忘れやすく、与えられた側はそれを容易に忘れることは出来ないものです。この植民地支配がもたらした多大の損害と苦痛に対し、ここに改めて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いたします。

     このような認識の下、これからの百年を見据え、未来志向の日韓関係を構築していきます。また、これまで行ってきたいわゆる在サハリン韓国人支援、朝鮮半島出身者の遺骨返還支援といった人道的な協力を今後とも誠実に実施していきます。さらに、日本が統治していた期間に朝鮮総督府を経由してもたらされ、日本政府が保管している朝鮮王朝儀軌等の朝鮮半島由来の貴重な図書について、韓国の人々の期待に応えて近くこれらをお渡ししたいと思います。

     日本と韓国は、二千年来の活発な文化の交流や人の往来を通じ、世界に誇る素晴らしい文化と伝統を深く共有しています。さらに、今日の両国の交流は極めて重層的かつ広範多岐にわたり、両国の国民が互いに抱く親近感と友情はかつてないほど強くなっております。また、両国の経済関係や人的交流の規模は国交正常化以来飛躍的に拡大し、互いに切磋琢磨しながら、その結び付きは極めて強固なものとなっています。

     日韓両国は、今この二十一世紀において、民主主義や自由、市場経済といった価値を共有する最も重要で緊密な隣国同士となっています。それは、二国間関係にとどまらず、将来の東アジア共同体の構築をも念頭に置いたこの地域の平和と安定、世界経済の成長と発展、そして、核軍縮や気候変動、貧困や平和構築といった地球規模の課題まで、幅広く地域と世界の平和と繁栄のために協力してリーダーシップを発揮するパートナーの関係です。

     私は、この大きな歴史の節目に、日韓両国の絆がより深く、より固いものとなることを強く希求するとともに、両国間の未来をひらくために不断の努力を惜しまない決意を表明いた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