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국민들 청구권 인정한 최초의 판결일본 기업들 “한일협정으로 소멸시효 소멸” 항변재판부 “일제강점 명백한 불법행위...일반 국민 청구권 포함되지 않아”
  •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를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살아 있다는 최초의 판결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및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는 평가다.

  • ▲ 대법원 자료사진.ⓒ 연합뉴스
    ▲ 대법원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에 따라 향후 유사 소송이 잇따를 수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내 일본 기업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통해 징용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은 이모(89)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9명이 “강제징용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며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과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 등은 1944년 징용돼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과 구 일본제철(현재 신일본제철) 등에서 강제 노역에 종사했다.

    1945년 해방 후 귀국한 원고들은 1995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히로시마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국내 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2000년 한국 법원에도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일본 및 한국 법원은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국내 하급심 법원의 판단을 완전히 뒤엎었다.

    재판부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는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피고측 항변을 배척했다.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일반 국민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적법한 한일합방조약에 따른 합법적 기간”으로 보는 일본 법원의 판단에 대해 “우리 헌법의 핵심적 가치에 정면으로 충돌한다”면서 일본의 식민지배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관점에서 일제 식민지배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일본 기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씨 등은 피고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해 가압류 등 재산보전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피고 회사의 지사가 국내에 없거나 피고와 법인격이 전혀 다른 현지법인인 경우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한편 재판부는 원고들이 낸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은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하기 때문에 각하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