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7일, 언론에는 ‘리비아 당국이 한국 외교관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확인 결과 리비아 당국에 의해 추방된 한국 외교관은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국정원 직원이었다. 그 외에도 지난 6월 15일 기독교 선교사가, 지난 7월 17일 교민 농장주가 리비아 사법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당황한 한국 정부는 지난 7월 6일 이상득 의원을 리비아에 급파했다. 이 의원은 13일까지 현지에서 바그다니 마흐무디 리비아 총리와의 면담 등을 통해 리비아 정부의 오해를 풀기 위한 양국 정보당국간 협의를 약속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카다피 원수와의 면담은 이뤄지지 못했다.

    외교통상부는 이 같은 사실을 출입기자들에게 브리핑하면서 국익 문제를 들어 ‘엠바고’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 언론이 이를 보도하고, 국내 언론이 이를 인용하면서 결국 27일 오후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은 엠바고를 해제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정작 이 일이 대체 어떤 사건인지, 무슨 이유로 리비아 당국의 분노를 촉발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화이트 요원(White Officer)’

    첩보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비밀작전(Clandestine Operation)을 주로 수행하는, 신분을 위장한 요원이고, 다른 하나는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요원이다. 전자를 ‘블랙’이라고 하고, 후자를 ‘화이트’라고 부른다.

    이번에 리비아 당국에 체포된 후 강제 추방된 요원은 ‘화이트’다. 전 세계 첩보기관들은 우방국은 물론 적성국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있으면 상대국이 첩보원을 외교관으로 위장시켜 보내는 것을 사전에 통보하면 ‘화이트’로 인정하고, 그 활동을 어느 수준까지는 용인한다. 따라서 해외공관에는 정보기관원이 파견돼 있는 게 보편적이다.

    리비아 당국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바로 국가원수 ‘가다피’와 그 아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었다. 국가마다 문화 또는 정치에 따라 정보수집이 어려운 분야가 있는데 리비아에서는 그것이 바로 국가원수와 그 가족에 대한 정보다. 이를 우리나라 첩보원이 건드린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 외교관이 카다피 원수의 국제원조기구와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 조직에 대한 첩보 수집을 한 사실을 파악하고, 한국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리비아 당국은 현재 우리 정부에 첩보수집 사실을 시인하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첩보 활동의 특성상 정부가 그 활동을 시켰다는, 공식적인 시인은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해당 정보요원이 다국적 기업에 매수되어 첩보활동을 한 것으로 리비아 당국에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고개 드는 음모론

    이런 한국과 리비아 양 측의 태도에 세계 호사가들의 입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예의 음모론도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다. 그 중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설이 바로 미국과 한국 당국 간의 거래설이다.

    리비아는 20년 이상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으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04년 9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서 UN안보리와 미국의 제재가 풀려 현재는 국내 경제가 빠르게 회복 중이다. 우리나라 플랜트와 건설 분야 또한 이런 리비아에 진출해 상당한 외화 수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는 여전히 반서방적이고, 이슬람 국가들과의 연대를 중시한다. 9년 넘게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북핵 문제만큼이나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이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 지원을 받는지, 그들을 돕는 이슬람 정권이 어디인지에 히스테리컬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무슬림 국가 내부에서 활동하기는 어렵다. 인종적-문화적 차이 때문에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리비아와 30년 이상 꾸준히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고, 동양인에 대한 리비아 당국의 인식도 좋은 편이다. 따라서 리비아 내부의 정보를 수집하기에 한국만큼 유리한 국가도 그리 흔하지 않다.

     이런 상황을 인지한 미국 또는 서방 국가들이 북핵 문제 등을 내세워 한국 정보기관과 거래를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첨단 첩보장비나 방대한 정보분석능력이 부족한 한국 정보기관이나 정부로써는 이 같은 거래를 단칼에 거부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게 정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모르쇠 일관하는 정부에 또 음모론 나올라

    이런 설이 서서히 피어올라도 외교통상부 등 정부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첩보 활동이기에 해명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외신을 통해 보도된 부분이 있기에 정부가 지금처럼 입을 닫는다면 리비아 당국의 일방적 주장만 보도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해당 정보요원이 리비아 당국으로부터 ‘비우호적 인물(persona non grata)’이라는 낙인까지 찍힐 정도였다면 정부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무기 수출과 관련된 사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언론과 정보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외교관 추방과 현지 교민 체포 및 구금까지 초래한 사건의 전개와 원인이 뭔지를 정부가 귀띔이라도 해주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