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세대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기성세대들에게 ‘요새 젊은이들’에 대해 묻자 나오는 대답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요새 애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우리 때만 해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애들이 대부분 대학생이야. 게다가 학생들끼리 동거도 그렇게 많이 하더라고. 하여튼 요즘 애들은 문란해요.”
    “요새 남자애들이 나이 든 여자들 따라다니면서 용돈 받아쓰고, 여자애들은 10살 넘게 차이나는 남자들이 돈만 좀 있다 싶으면 좋다고 헤헤거리고…. 그러면 안 되지.”
    “요새 대학생들은 넓게는 보는지 몰라도 깊이가 없어요. 영어 잘 한다고 해도 어려운 단어는 이해조차 못해. 그래가지고는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지.” 

    이 같은 기성세대들의 대답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요즘 젊은 것들 버릇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문구와 같은 부정적 인식을 넘고 있다. 특히 기성세대들은 ▲사회에 대한 고민 부족 ▲깊이 없고 단편적인 지식 ▲문란한 이성관계와 타락한 도덕성 ▲돈에 대한 집착을 2030세대, 특히 요즘 대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기성세대들은 요새 대학생들을 정확히 본 걸까. 

    사회에 대한 고민 부족? 세상이 변했다! 

    정치권의 486들은 늘 ‘기득권 세력 타파’를 주장하지만 현재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는 40대 중반 이후부터다. 이들이 대학을 다닐 때 우리 사회는 격변의 시기였다. 평생을 통치할 것 같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친북세력의 발호, 여기에 맞선 공안기관들의 활동,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희망이 서로 충돌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 대학을 다닌 486세대들에게 대학생활이란 꿈과 낭만을 찾아 방황하거나,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이 가진 특권을 활용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거나, 학문의 상아탑을 찾아 밤새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학점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중에 그런 노력들에 대한 보상을 받은 이들도 많았다. 이때는 우리 사회의 산업화가 아직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이 사회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이런 대학생활을 요새 대학생들에게 들려주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왜일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대학생활이란 사회생활을 위한 준비 단계이자 고교시절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도서관 위치부터 찾는다. 4년 또는 휴학 기간을 포함해 6년 정도의 기간 동안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1학년 1학기부터 열심히 공부해 좋은 학점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학점을 얻어야 하는 건 좋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함이고, 좋은 기업에 입사하려는 건 현재 대학생들의 눈에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이 속한 조직으로 그 사람의 인간성까지 평가받는, 계급사회’처럼 보이고 그렇게 부모와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보기에 우리 사회는 거의 계급 사회다. 그 사람이 졸업한 대학교, 출신지역, 소속된 조직(기업 등), 그의 가정환경으로 그 사람의 인격마저 평가받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아직은 인생 경험이 짧기 때문에 그런 ‘배경’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대학에 입학해서도 ‘스펙(Specification, 취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점과 자격증 점수, 인턴 경험, 공모전 입상 등을 의미)’을 쌓기 위해 목숨 걸고 노력한다. 

    방학 때도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고, 여유가 있으면 ‘스펙’을 쌓기 위해 해외연수나 어학공부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대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거나 낭만이나 꿈을 찾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깊이 없고 단편적인 지식?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 

    기성세대들이 대학생들을 비판하는 또 다른 주제는 사물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대학생들은 할 말이 많다. 

    현재 세계 인구는 약 68억5천만 명(美통계국의 세계인구시계 참조)에 달한다. 그 중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교환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10억 명이며 무역을 통해 생활하는 나라는 240개국에 이른다. 이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각각의 생각을 갖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68억 명의 사람들은 또한 인터넷과 미디어, 책, 정부 등을 통해 엄청난 량의 정보에 노출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몇 가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깊은 분석 데이터들이 제공된다. 반면 수시로 변하는 각자의 욕구에 대한 데이터는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이런 각 개인의 욕구에 대한 데이터가 기업 또는 개인의 이익과 더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을 몸으로 이해하는 대학생들에게는 깊이 있는 철학이나 사회정의에 대한 고민, 민주주의 절차나 실현 등보다는 현재의 세상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로 가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자신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한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기에 그에 대한 표현도 잘 하지 않는다. 때문에 기성세대들이 보기에는 대학생들이 ‘별 생각이 없어’ 보일 뿐이다. 

    문란한 이성 관계와 타락한 도덕성? 우리는 현실에 충실할 뿐 

    기성세대들 중 특히 유흥업소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대학생들의 이성 관계와 성도덕이 문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직접 경험했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20대 젊은 여성들이 온갖 유흥업소에서 ‘등록금’을 이유로 웃음과 몸을 팔고, 대학생들끼리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대학생들의 정조관념이 무너진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생들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이 전체 20대 여성은 아니며 그녀들을 보는 시각도 기성세대와 같이 ‘더럽다’고 보기 보다는 ‘돈에 환장한 사람’으로 인격에 결함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고, 동거에 대해서는 ‘좋아하면 할 수도 있지만 여자가 손해’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우선 20대 여성들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학생들의 다수가 ‘그녀들을 찾는 기성세대에도 문제가 많지 않느냐’는 반문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대학생들을 ‘돈밖에 모르는,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대학생 대부분은 과거와는 달리 유흥업소를 찾는 것 자체도 ‘외도’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 이런 곳을 찾는 기성세대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한편 실제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몇몇 대학생들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면,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오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필요한 돈은 큰데 짧은 기간에 그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은 이런 곳 뿐”이라며 그 일을 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대학생들이 동거의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건 당연히 서로 사랑해서였고, 두 번째가 바로 생활비용의 절약 문제였다. 그 외에는 ‘동거를 통해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어서’라는 이유도 나왔다.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나중에 결혼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동거에 대해서는 ‘동거가 나쁜 건 아니지만, 만약 결혼할 사이가 아닌 경우에는 여성이 더 손해’라는 이중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는 결혼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대학생일 때 가졌던, ‘사랑하면 결혼한다’는 생각을 갖기 보다는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자 집안과 집안 간의 결합’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와 기성세대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경제적 현실을 모두 반영하고 있었다. 

    돈에 대한 집착? 돈은 현실에서의 자유 

    기성세대들이 대학생을 비판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젊은 학생들이 돈에 너무 집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비판이 바로 이것이었다. 

    기성세대들이 대학을 다닐 때는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이를 빌려주고 돈을 받았었다. 아르바이트의 경우 막노동이든 가게에서 일하든 2~3개월이면 등록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 이때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건 극히 예외였다. 취업 또한 교수의 추천서를 받아 쉽게 취업할 수 있었고, 학점관리라는 개념도 드물었다. 

    하지만 현재 대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현재 대부분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500만 원 가량. 학교를 다니면서 쓰는 생활비는 평균 40~50만 원 수준이다. 여기다 영어, 자격증, 공기업이나 공무원, 언론 취업을 위한 사교육비까지 합하면 한 학기에 최소한 1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대학생활 동안 수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문제는 이런 돈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가정은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대출을 받거나 쉴 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졸업이 다가올수록 쌓이는 건 빚밖에 없다. 취업이 될 지조차 불투명하다. 여기다 만약 이성교제까지 한다면 생활 자체는 암울할 뿐이다. 

    이런 대학생들에게 ‘돈’은 곧 현실에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돈’만 좀 있다면 이성친구와 자유롭게 여행도 가고, 등록금 고민, 취업 고민을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멋진 젊음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때문에 지금 대학생들에게 ‘돈’은 기성세대들의 젊은 시절 ‘권력’이나 ‘권위’와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권력’이나 ‘권위’에 다가서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돈’은 노력하면 그나마 기회라도 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대학생들의 간극을 메우려면 

    기성세대들이 지금의 대학생들을 비판하고 무시하는 건 사실 그들의 경험과 시각으로 대학생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만만한’ 대학생들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물론 대학생들 또한 그런 기성세대를 ‘아저씨’라 부르며 무시하지만 우리 사회의 큰 틀에서 보면 그건 ‘권력’이나 ‘권위’로부터 멀어진 대학생들의 소심한 반항에 불과하다. 

    최근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 간의 같은 언어, 생각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기성세대의 시각과 틀에서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참고 했을 때, 이 같은 세대 간의 간극을 메우고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강자, 즉 기성세대가 그 아랫세대에게 먼저 대화를 제안하고 양보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되리라 생각된다.

    ‘④2030이 보는 대한민국’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