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연극 '나는 너다'
    ▲ 연극 '나는 너다'

    안준생이 아버지 안중근에게 묻는다. "겨레, 민족, 나라가 다 무엇이 길래 자식도 가족도 다 버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쐈냐"고. 원망어린 아들의 질문에 안중근은 가만히 답한다. "너를 위해서…" 였다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여섯 발의 총성이 울린 지 벌써 100년이 흘렀다.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차디찬 여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그의 가족에 대해 조명한 작품은 드물었다. 연극 '나는 너다'는 항일투사의 대표인 안중근과 그의 아들이지만 친일파로 훼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안준생의 대조적 삶을 동일선상에 놓고 하나로 연결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당대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인물을 불의롭다고 꾸짖으며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아들로, 그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살아야했던 삼십육년간은 아들 안준생에게 얼마나 잔인한 형극의 세월이었던가?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했던 소년은 세 살 때 부친을 잃고 상해 임시정부가 남경으로 망명한 뒤로는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일인들의 손에 떨어져서 갖은 학대를 받으며 정치선전의 도구로 이용당했다.

  • ▲ 연극 '나는 너다' ⓒ 뉴데일리
    ▲ 연극 '나는 너다' ⓒ 뉴데일리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호부견자(虎父犬子) 훌륭한 아버지의 비열한 아들로만 기억되는 안준생의 고통을 통해서 안중근 의사의 영웅담을 다시 보려한다. 영웅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던 안중근과 ‘사람’이기 이전에 ‘매국노’가 되어버린 아들 안준생의 엇갈리는 간극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물어보고자 한다.

    안중근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나는 너다'는 제작기간만 1년 6개월이 걸린 작품이다. 연극의 전체 스텝들은 지난해 연해주 땅에서 10일동안 거하며 그의 자취를 안중근 의사의 자취를 따라갔다.

    진지하고 깊은 역사의식, 소외되고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 간결하고 힘 있는 대사와 여운을 남기는 언어들. 이번 작품 ‘나는 너다’에는 작가로서 정복근의 개성과 장점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다. 이 작품은 안중근의 생애와 거사를 일대기적으로 그리는 평면적인 서술에서 벗어나 1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안중근의 거사로 인해 가장 상처받고 고통 받은 사람들인 그의 가족들의 형상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의인의 가족이 짊어져야 했던 굴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정복근 작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죽어간 이들에 대해 우리가 무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우리는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고 그들이 가슴에 품었던 상처나 꿈, 사랑까지도 고스란히 유전적으로 이어받고 있다. 그것들을 기억하고 풀어감으로써 우리들도 다같이 좀더 단단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윤석화 연출이 연극 ‘나는 너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매우 정확하다. 바로 안중근이 아니라 이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녀는 “너는 누구냐, 너는 왜 살고 있느냐.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다"라며 "최소한 안중근을 비롯해 이 땅이 바로 서기 위해 죽어간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위해 죽어야 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바로 나를, 우리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연출의 의도를 밝혔다.

    또한, 이번 작품으로 첫 연극무대에 도전하는 배우 송일국은 안중근과 안준생 1인 2역을 맡았다. 실제 독립운동가였던 백야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안준생 역을 어떻게 소화해낼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매년 청산리 대장정을 개최하며 만주땅을 찾아 독립군의 의지와 흔적을 찾는 등 자신의 뿌리에 대한 열정도 남다른 그이기에, 그의 혈관과 정신에 이어져온 뜨거운 구국의 열정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를 모은다.

    송일국은 대본의 마지막 대사 한 줄에 연극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의 "너를 위해서…". 윤석화 연출은 "후대 100년의 우리를 살게 하기 위해 총을 쏜 것"이라고 그의 말에 덧붙인다.

    연극 '나는 너다'는 안중근의 삶과 거사의 의미와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그를 박제된 영웅의 이미지가 아닌 또렷하고 구체적인 인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연극 '나는 너다'는 오는 27일부터 내달 29일까지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