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 백석문화대 평생교육과에 다니는 여대생 김득원(31)씨는 갓 두 돌을 넘긴 딸과 단둘이 사는 미혼모다.
    그러나 김씨는 얼굴이나 신분을 숨기려는 다른 미혼모들과는 달리 본명 공개까지 개의치 않았다. 오토바이 타기를 즐기는 김씨는 당당한 한국판 '미스 맘마미아'다.
    김씨에게 부탁해 그녀와 하루를 같이 보내봤다.

    ◇ 미혼모녀 가족의 분주한 아침
    지난달 29일 충북 천안시 성정동에 자리 잡은 김씨의 집을 방문했다.
    김씨가 딸 평화와 함께 사는 보금자리는 4층짜리 빌라건물 2층에 있는 원룸.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길 동네 주민들이 눈에 띄었다.
    김씨의 하루는 여느 집처럼 아침 7시에 시작된다.
    그러나 김씨의 일상은 평범한 가정집과는 조금 다르다.
    단 두 식구가 살기 때문에 안정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등교 준비에 분주한 것은 마찬가지다.
    김씨는 딸 '평화'에게 단출하게 차린 아침밥을 먹인 뒤 손을 붙잡고 바삐 대문을 나선다.
    8시20분. 평화가 다니는 어린이집 버스가 어김없이 집 앞에 멈춰 선다.
    평화는 귀여운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떠나고 나면 김씨는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 보낼 수 있는 평화의 시간을 맞는다.

    ◇ 결혼 전제로 임신..그러나 석달만에
    김씨는 어떻게 미혼모가 됐을까.
    김씨가 평화를 임신한 건 실수가 아니었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남자친구와 상의한 끝에 계획적으로 임신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랑이 식는 건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 임신 석 달째 평화 아빠와 김씨는 헤어졌다.
    김씨는 "연애를 하다가 사랑이 식은 상태에서 아이 때문에 결혼한다는 건 내게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다"며 "사랑이 식었는데 단지 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빠, 엄마의 인생이 그냥 합쳐질 수밖에 없다는 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은 사랑은 사랑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따로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평화 아빠는 중절을 요구했다.
    김씨는 그러나 "아이를 지워볼까 하는 갈등은 전혀 없었다"며 "당연히 낳아서 기르겠단 생각밖에 안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끔은 임신했을 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때 자신이 '천사' 같았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좋은 생각하려 했고 좋은 것만 보려 하고, 좋은 것만 하려 하고, 좋은 말만 들으려고 했죠. 그렇게 노력하니 습관이 들더라고요.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해주려하고…. 아이와 한몸일 때 엄마는 가장 깨끗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김씨에겐 미혼모란 딱지가 붙여졌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왔다.

    ◇ 경제적 곤궁이 가장 큰 고통
    김씨는 인터뷰 내내 좀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학생 신분으로 딸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혼모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묻자 "경제적인 것만 좀 해결돼도 좋은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그렇지만 "힘든 상황이었지만 살 길을 생각하면 살 길밖에 안 보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돼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수 있었고, 출산 전 합격한 백석문화대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김씨는 몇 달 전 자전거를 새로 샀다.
    버스를 타는 것보다 시간도 줄일 수 있고, 교통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10만원이 넘는 자전거를 목돈을 들여 사야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러나 허리 디스크도 있어 운동도 하고 살도 뺄 겸 결국 자전거를 샀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교통카드나 쌀 지원 이외에도 반찬거리나 국거리, 과일 같은 부식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 꿈은 사회복지사예요"
    김씨는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지만 그래도 살림이 빠듯해 서울에 계신 부모님의 도움도 받는다.
    평화를 잘 키우려면 공부를 더해서 전문 직업인이 돼야 한다며 대학 진학을 권유하고 등록금까지 내준 것도 어머니였다.
    "사실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중학교 때 학교를 뛰쳐나왔어요. 평화를 양육하려면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눈이 제게는 없었는데 그것도 어머니가 그려주신 거죠."
    김씨는 평화 엄마가 되기 전에도 여성복지 분야에서 일을 했다.
    그때 복지 현장을 경험하며 공부에 대한 목마름을 느꼈지만 다소 막연한 계획일 뿐이었다.
    평화의 출생은 막연하던 대학 진학을 앞당긴 셈이다.
    김씨는 2학년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과정으로 실습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침에 평화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잠깐 자기 시간을 갖고는 천안여성인력개발센터로 출근한다.
    김씨가 여기서 하는 일은 다른 강사들이 강의하는 일을 돕는 것이다.
    수업 교재를 준비하고, 손이 필요할 때 거드는 일 등이 김씨가 실습할 것들이다.
    김씨는 실습이 끝나고 졸업을 하면 4년제 대학 사회복지사 과정에 편입할 계획이다.
    평생교육과 복지란 전문성을 결합시키겠다는 게 김씨의 구상이다.
    10년쯤 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었다.
    김씨는 "제 꿈은 여성 복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라며 "40대가 되면 성매매, 미혼모, 여성가장, 다문화가정, 가정폭력 문제 등을 돕는 여성 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엔 미혼모 경험도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기본생계비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자활이 필요한데 미혼모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고 교육받을 수 있는 장학제도도 확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딸이랑 레포츠 즐기며 살고 싶어요"
    김씨는 당당한 미혼모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 휴학하고 돈을 벌어야 하나 싶어 몇 차례 입사 면접을 봤고 그때마다 미혼모임을 밝혔지만 모두 합격 통지를 받았다.
    김씨는 "제 성격이 미혼모란 걸 조심스럽게 말하기보다 당당하게 말하니까 면접관들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오히려 가산점이 되는 듯하다"며 "나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일하면 상대편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다만 공부를 더해야겠단 생각에 취업은 접었다.
    미혼모란 이유로 특별히 불이익을 본 적도 없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가 실습을 하고 있는 천안여성인력개발센터 이정숙 관장도 "미혼모라는 사실을 첫날 만나서 당당하게 말해 조금 놀랐다"며 "당당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열심히 사실 분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딸 평화의 의미를 묻자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녀에겐 작은 소망이 있다. 평화와 자신이 좋아하는 레포츠를 즐기는 것이다.
    김씨는 "평화랑 수상스키나 등산, 바이크, 카트, 여행 등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미혼모를 부끄러워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이, 아빠는 아빠의 인생이 있는 거죠. 내 인생을 올바르게 찾고 내가 잘 서야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