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영은. ⓒ 뉴데일리
    ▲ 유영은. ⓒ 뉴데일리


    그리스 재정위기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영국 등도 재정 위험 국가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유로존 전역으로 전염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으며, 유로화는 연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 될 경우, 이는 유로존과 금융시장의 안정에 심각한 위험이 될 것이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현재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20%에 달한다. 그리스는 유로존 국가들 중 가장 큰 액수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고, 이 액수는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국가부채(GDP의 18.6%)의 6배가 넘는 엄청난 수치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는 어떨까?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양호한 편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359조 6천억 원으로 GDP의 33.8% 수준에 머물고 있다. G20의 평균인 80%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다.
    그러나 이 수치만을 보고 낙관적인 자기 평가를 내린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사실, 국가채무로 인해 지불해야 할 이자만 올해로 20조인데, 이는 서울시 예산 21조 3천억 원에 육박하는 액수다. 국가채무가 외환위기 때보다도 크게 늘어난 것은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확대됐던 재정정책 때문인데, 올해 말의 국가 채무는 407조 200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의 국가채무 수준을 보면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양호한 편이지만, 재정 상태의 변화 추세를 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금융위기 후 악화된 재정 상태를 원상복구하고 재정 건전성을 위한 고삐를 죄기로 한 것은 시의 적절한 처사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적절한 재정지출을 해야 하지만 재정 건전성도 관심을 둬야 할 때"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 같은 최악의 사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만반의 대비책을 세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심히 우려되는 것은, 그리스 재정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그리스 사회의 문제점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준 수석연구원은 18일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본 그리스 재정위기' 보고서에서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는 대가로 지역 유권자들에게 고용이 보장되는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제공해 재정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집권당은 이익집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종 산업 및 농업 보조금, 고용보호, 임금인상 등의 경제적 편익을 제공했다"고 지적했으며, 정부의 갈등 조정 능력 부재도 재정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는 이미 1980년대 초부터 방만한 재정운영을 지속해 왔다"며 "GDP 대비 국가부채가 1980년 22.3%에서 2000년 103.4%로 증가해 유로화 가입 조건을 충족하는 데 실패하자 재정통계를 조작해 2001년 유로화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국가발전을 위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파적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정당간의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본분을 잊고 정당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의 집권당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표를 얻는 대가로 유권자들에게 정당치 못한 이익을 제공했다는 대목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후보들이 당선 이후 해당 사업의 추진을 용이하게 해주겠다는 약속 하에 지역의 사업자들로부터 정치자금과 지지를 얻어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씁쓸한 정치 현실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방만한 재정 운영’ 역시 그리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천안함 사태의 수습 과정에 있어서 정부와 군 당국이 보여준 답답하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모습은, 정부예산의 14.7%나 차지하는 국방예산이 과연 제대로 쓰이고 있기나 한 걸까 하는 회의감을 불러 일으킨다. 몇 십 억씩의 예산을 들어 설치해 놓은 자전거 도로들은 교통체증만 유발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순찰차로 추격해도 빈번히 범인을 놓치는 치안 현실 하에서 에너지 절감이란 명분 하에 전국적으로 시행된 ‘자전거 순찰’은 단 한 건의 단속 실적도 내지 못했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꼴이다. 어느 공공기관 직원의 연간 휴가와 휴일을 합치면 한 해의 절반은 171일이 된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면, 안 그래도 낮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형편없이 바닥으로 내달을 것인가?

    우리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 추세는 정부의 고정 지출을 빠른 속도로 증가시킬 것이다. 따라서, 국가 재정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리스 사태를 남 일 보듯 하다가는 머지 않아 땅을 치며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스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획기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상태가 꽤 양호해 보이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재정악화의 요인들을 돌아볼 때, 이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재정악화는 물론이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무너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해인 ‘비뚤어진 정당정치’를 ‘정당의 이익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의회중심의 정치’로 탈바꿈시켜야 하며, 자치단체의 자율적 통제시스템을 강화하여 ‘부패 없는 책임자치’를 이루어야 한다. ‘탁상행정’과 ‘전시행정’을 지양하고, 정부조직에 시장의 ‘경쟁논리’를 도입하여 공무원의 안일함을 척결하며, 과학적인 감사ㆍ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이 시대의 과제이다. 한국의 재정 신호등은 노란불인 것이다. 빨간불이 아니라고 속도를 내 지나쳐 가는 것이 아니라, ‘초록불이 아니구나!’하며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서는 것이 안전상식이다.

    첨언으로, 연일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다가도 해결하기 난감한 문제만 터지면 ‘정부가 이런 것도 해결 안 하고 뭐 하냐.’며 정부에 책임을 떠미는 ‘무책임하고 능동적이지 못한’ 국민 의식에 대한 국민들의 자기 반성이 촉구된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 싶다. 국민과 정부가 서로를 신뢰하고 살피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건전한 재정 운영’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가적 과제도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