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시'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 ⓒ 박지현 기자 
    ▲ 영화 '시'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 ⓒ 박지현 기자 

    이창동 감독이 영화 ‘시’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를 두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연관 짓는 일부의 시각에 대한 경계를 나타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에서 열린 영화 ‘시’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은 “마지막 시는 영화 전체의 구조적으로 주인공 미자가 죽은 소녀의 희생을 슬퍼하며 기리는 마음을 적은 것”이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는데서 나오는 하나의 과정이며,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어둠과 더러움을 껴안는 것이라는 것에 대한 관객과의 교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 장면을 보며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며 “관객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특정인의 죽음으로 한정하는 것은 영화의 의미를 한정지을 수 있기에, 그렇게 보지 않길 바란다. 관객마다 자유롭게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그 순간 떠오르는 누군가를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전했다.

    영화 ‘시’에 등장하는 마지막 시 ‘아네스의 노래’는 이 감독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시는 영화 속에서 시 문학 강좌에 다니던 미자가 마지막 날 완성한 시로, 자신의 손자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한 여중생을 기리는 마음이 담겨있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이 시는 주인공 미자의 나레이션에서 여중생의 목소리로 이어지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한편, 영화 '시'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각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아네스의 노래' 전문>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치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아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