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문제의 결정적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가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대북 응징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안함 사건의 폭음은 ‘주체의 나라’(김정일 정권)의 장송곡이다.
    그러나 장례위원장은 대한민국이나 미국이 아니다. 드디어 중국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투로 표현한다면 김정일 정권은 중국의 중장기 동북아 전략에 ‘딱’ 걸려든 셈이다. 그러나 ‘주체’의 소멸이 반드시 대한민국의 활로를 열어주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에도 동시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주체’는 1956년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시작한데에 따른 북한 나름의 궁여지책이었다.
    무슨 철학적 심오함이 있는 것처럼 외양을 꾸몄지만 사실은 소련 ‘수정주의’와 이에 반대하는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를 유지한다는 정권생존법이었다.
    또한 생활문화면에서는 ‘우리 식대로 산다’는 일종의 고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는 소련의 해체 이후에는 의미가 없어졌다. 적어도 국제관계상으로는 그랬다. 그런 가운데 중국이 주자파의 길(개혁, 개방)을 걷기 시작했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새로운 생존법이 필요했다.
    김일성의 핵과 김정일의 선군정치-강성대국이 그것이다. 그들이 죽어라고 핵에 매달려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상하기 짝이 없는 국제관계에서 핵의 방향은 일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대남-대미용이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중국은 심모원려하고 있었다.
    중국 자신도 ‘개혁, 개방’으로 정신없는 마당에 지정학적 가치가 있는 북한을 난폭하게 다룰 여지가 없었다. 형제당의 입장에서 ‘주체’라는 것은 분명 유쾌한 방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시의 상황에서 적절하게 북한을 다루지 못할 경우에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중국에게 버거운 것이었다. 중국은 그동안 ‘도광양회’ ‘화평굴기’의 슬로건 아래 개혁, 개방의 성과를 높이는데 진력했다. 이 두 단계에서는 주변부에 대한 ‘안정적 관리’가 무엇보다 긴요했다. 중국이 한반도비핵화다자회담(6자회담)을 주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중국은 자본주의의 구세주를 자임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유소작위’(말해야 할 것은 말한다)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중국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구상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이 자신의 세계구상을 펴는 데는 두 가지가 필수요소이다.
    하나는 미국과의 선택적인 전략협력이다. 또 하나는 전자(前者)를 위한 주변부의 절대안정이다.
    전자는 전면적이기보다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서 지역에 따라서는 미-중의 콘도미니엄(동거체제) 체제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때에 한반도는 콘도미니엄 체제에 속한다.

    그러나 김정일의 ‘난동’은 계속됐다.
    김정일은 후자(後者)의 절대적 안정을 망쳐놓음으로써 전자의 존립까지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과거 북한의 대남-대미 도발은 미국과 한국의 대중(對中)의존도를 높이는 순기능을 일부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콘도미니엄체제에서 북한의 도발은 오히려 역기능을 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관심을 증대(한미동맹 강화, 한미일의 對中견제체제 강화)시켜서 중국의 활동변경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천안함 사건이 지역정세의 분수령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김정일 정권이 작금의 지역정세를 오판했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정세흐름의 역류를 시도한 것, 둘 중 하나이다. 어느 쪽이든 김정일은 중국의 세계전략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김정일의 방중 때 중국은 북한에 대해 ‘전략적 소통’을 요구하고, 개혁, 개방을 권유하는 방법으로 경고했다.

    중국의 언론(환구시보)이 ‘중국은 북한의 인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북한의 핵융합(수소폭탄)성공 주장에 대해 ‘핵 장난을 그만두라’고 주의를 준 것은 향후 중국의 대북 정책이 변화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국의 언론이 일부를 제외하곤 이같은 중국 언론의 움직임이 가진 의미에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대북 비난에 나선 중국의 언론이 대형언론이 아니긴 하나 분명히 관영언론(官營言論, 환구시보는 인민일보 계통)이다. 공산국가에서 관영언론은 당의 허락을 받지 못한 논설을 실을 수 없다. 과거 문혁(文革)도 65년 상해의 ‘文匯報(문회보)’에서 발단되었다. 일단 발단해놓고 정세를 보아 전국으로 확대하고 당 중앙이 수렴하는 것이 중국식 ‘대란시동법(大亂始動法)’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발표를 나름대로 분석한 뒤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반응한 것은 과거와 비교해 볼 때에 퍽 이례적인 모습이다. 북한이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보채는 등 적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것도 무엇인가 감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일 방중 때에 천안함 사건은 그들과 무관하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일단 이번 사건과 관련, 외관상으론 북한을 비호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막은 달라질 것이다. 중국은 분명 북한에 대한 지금까지의 ‘안정적 관리’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들은 곧 ‘지배적 관리’로 전환할 것이다.

    지배적 관리는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고 북한을 ‘순종적 위성국가화’하는 것이다.
    결국 동북공정이 북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북한을 사실상 ‘직영’하는 것이다.
    ‘주체’의 북한은 소멸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방법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는 중국식 방법이 포함될 것이다. 그에 따른 미중간의 또 다른 거래가 수반되겠지만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또 다른 성질의 과제를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중국의 대미 완충지대이기도 했지만 ‘주체의 북한’은 한국의 대중 완충지역이기도 했다.

    따라서 주체 북한의 소멸은 한국이 중국의 지역전략과 정면으로 대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전략적 패러다임에 있어 전대미문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장기의 시각에서 국가전략을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