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30)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중추원 의관들이 올린 재기가감자 명단에 역적 박영효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로(大怒)했다. 이것은 황제에 대한 반역이며 서명한 의관들은 역적과 동류(同類)였다.

    1898년 12월 25일, 황제는 민회(民會) 금지령을 선포하여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해체했다.

    또한 며칠 후인 1899년 1월 2일, 주모자인 나의 중추원 의관직을 박탈했다.

    그날 저녁 무렵, 내 의관직 박탈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려고 달려온 사내는 박무익이다.
    하긴 오선희 가문 외에 내 은신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외부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관직 박탈로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방에서 마주앉은 박무익이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을 털고 들어왔지만 박무익의 어깨와 소매에도 눈이 붙어 있다.

    박무익이 말을 이었다.
    「이것을 기회로 임금은 박영효 일당을 모조리 소탕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임금의 정보기관인 이익치군(軍)이 활동을 강화하는 것에 비례해서 반대세력의 정보원들도 기민하게 활동한다.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박무익이 정색하고 나를 보았다.
    「나으리, 엊그제 오목사댁 식구들이 모두 전주로 낙향했습니다. 아씨도 따라가신 것 같습니다.」
    나는 외면한 채 머리만 끄덕였다.

    앞에 앉은 박무익은 포목 수입상이며 중개인 모리를 살해한 것이다.
    물론 모리가 오선희의 부친 오석구를 빼내온 후다.

    박무익은 일당 넷과 함께 중촌의 모리 거처를 기습하여 모리와 경호원 둘을 죽이고 금고 안에 있던 문서와 돈, 금괴까지를 몽땅 강탈해왔다. 뒤가 구린 놈들이어서 서로 쉬쉬 하고는 있었지만 홍길동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났다.

    지금도 눈에 불을 켠 일본군이 혐의자를 찾고 있어서 밤에는 통행인이 없다. 
    박무익이 문득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나으리, 모리의 금고에서 무엇이 나온 지 아십니까?」

    나는 눈만 크게 떴고 박무익의 말이 이어졌다.
    「일본 돈 38만원이 나왔습니다. 그 돈으로 관찰사 둘에 목사 하나쯤은 살 수 있겠더군요.」
    「......」
    「저당 잡힌 집, 토지 문서가 10여장, 서약서를 보니 20여만원을 빌리고 받은 문서인데 물론 오목사댁 문서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나중에 다 돌려줄 작정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무익이 눈을 치켜뜨고 나를 보았다.
    「수첩에 내장원 관리 다섯 놈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궁내부 이름을 걸었지만 황제 재산을 관리하는 내장원 놈들이었습니다. 그 돈이 다 황제한테 가는 돈이었지요. 물론 중간에서 떼어먹기도 하겠지만 말씀이오.」
    「......」

    「내가 이런 황제를 위한답시고 의병을 일으켰다니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죽고 싶은 생각이 듭디다.」
    「......」

    「어제 사람을 시켜 나으리 댁에 돈을 좀 보내 드렸습니다. 나으리께서 보내신 것으로 했지요.
    앞으로도 식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보시오. 박공.」
    하고 내가 불렀을 때 박무익이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한다.

    「이만 물러갑니다. 나으리께선 각별히 몸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나으리는 조선 땅에 꼭 필요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리고는 바로 등을 돌렸으므로 나는 입만 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