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29) 

     「혐의가 무엇입니까?」
    내가 제법 공손하게 물었으나 모리는 별 말을 다 묻는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대답은 했다.
    「딸이 불경(不敬)한 연설을 하도록 교사 한 죄요.」

    모리의 시선이 오선희를 스치고 지났다.
    「그래서 아비와 딸에게 각각 1만원씩 할당 된 것이지.」
    나는 모리가 마치 재판관처럼 느껴졌다.

    그 때 오선희가 말했다.
    「지금 그만한 거금이 없습니다. 혹시 빌릴 수는 없겠습니까?」
    「저당 잡힐만한 가옥이나 토지가 있소?」
    「예, 전주와 이천에 농지와 가옥이 있지요.」

    그러자 문규가 거들었다.
    「전주에는 이백오십석, 이천은 3백석 소출의 논답이 있습니다.」
    「그럼 이천 땅을 저당 잡으면 2만원을 빌릴 수 있겠소.」

    그래놓고 모리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기한은 반년이고 이자는 5할이요. 약정서를 쓰시겠소?」

    「아니 그럼.」
    이제는 내가 나섰다.
    정색한 내가 모리를 쏘아보았다.
    「2만원을 빌리고 반년 후에 3만원을 갚으라는 말씀이오?
    3백석 농지는 시가로 3만원이 넘습니다. 너무 과합니다.」

    「이 사람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세게 혀를 찬 모리가 머리까지 젓더니 다시 오선희를 쏘아보았다.
    「이 깊은 밤중에 추위를 무릅쓰고 겨우 합의를 맺고 왔더니 이게 무슨 짓이오? 싫거든 없었던 일로 합시다.」

    「하겠습니다.」
    오선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선을 내린 오선희가 말을 잇는다.
    「약정서를 쓰겠습니다.」

    「그럼 가십시다.」
    어깨를 편 모리가 발을 떼면서 말했다.
    「토지 문서를 확인해야 될테니까, 잘하면 목사께선 내일 밤에 집에서 주무실 수가 있을 것이오.」

    삼청동 길목에서 오선희 일행과 헤어진 나는 다시 재석과 함께 남산의 거처로 돌아왔다.
    날씨는 매섭게 추웠지만 생각에 잠긴 나는 추위도 잊었다.

    거처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3시 반이 되어 있었다.
    화이트한테서 선물로 받은 회중시계를 꺼내 본 내가 방으로 들어설 때였다.
    뒤에서 재석이 말했다.
    「나으리, 저 잠깐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응, 그러게.」

    가볍게 대답했던 내가 문득 몸을 돌려 재석을 보았다.
    이 시간에 어딜 다녀온다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내 시선을 받은 재석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웃는다.
    「나으리, 대장을 만나야겠습니다.」

    대장이란 박무익이다.
    재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모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멈춘 나는 숨을 삼켰다. 무슨 말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 재석이 말을 이었다.
    「그런 놈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내일 목사 나으리가 석방되시고 나서 모리의 거처를 습격하겠습니다.」
    「......」
    「모리를 처치하고 농지 문서나 약정서, 착취해간 재물까지 모조리 빼앗아 오지요.」
    「......」
    「대장도 기꺼이 나설 것입니다.」

    재석은 모리의 행태에 나보다 더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이 바로 의병이 할 일이지.」

    그러나 마음은 개운하지가 않고 왠지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