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24)

     「그것은 황제께 도전하는 것이네.」
    윤치호가 정색하고 말했다.

    정동교회의 대기실 안이다.
    문을 닫았지만 외풍이 들어와 안에서도 손발이 시렸다.

    내 시선을 받은 윤치호가 말을 잇는다.
    「황제께서 진노하실 걸세. 그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같아.」

    윤치호는 박영효의 대신임용후보자 청원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는 최정덕 등과 합세하여 20여인의 동조자를 모았다.
    이틀 후인 12월 20일에 황제께 상주할 예정인 것이다.

    내가 머리를 저었다.
    「그렇다면 제가 중추원 의관직을 붙들고 앉아 있을 수 없지요. 황제의 허수아비 노릇은 안하겠습니다.」
    「이보게, 우남.」

    입맛을 다신 윤치호가 말을 잇는다.
    「그대는 과격하네. 황제 폐하와 맞서 이길 것 같은가?」

    그 순간 내 화가 폭발했다.
    그렇다. 나는 과격했다. 그러나 비굴한 개는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황제라니요? 일본에 주권을 다 빼앗기고 있는 형편에 저 혼자 황제라 칭하고 제를 지내면 세계만방이 오, 폐하. 하고 굽신댑니까? 다 웃습니다.」

    둘이 큰 방에 있어서 내 목소리가 벽에 부딪쳐 울린다.
    상기된 내가 내친김에 쏟아내듯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황제는 내장원에 금을 쌓아두고 매관매직을 합니다.
    조선 8도에 돈 안내고 지방관으로 내려간 작자가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도 황제가 보낸 자가 와서 한성부 판관직을 주겠다고 합디다.
    제 입을 막으려는 짓이지요. 저는 이번에 황제가 개혁을 할 의도가 있는지를 보려는 것입니다.」
    「어허.」

    내 격한 기세에 놀랐는지 윤치호는 신음만 뱉았다.
    호흡을 가눈 내가 먼저 자리에서 있어섰다.

    「제 뜻을 아셨을테니 대감께선 미리 준비를 해 두시지요.」
    대비를 하라는 말이었다.

    밖으로 나왔더니 교회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있던 재석이 눈으로 옆쪽을 가리켰다.

    「저기 와 있습니다.」
    재석의 시선 끝을 본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담장에 붙어 서있는 사내는 오목사댁 청지기 문규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문규가 예의바르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오후 5시쯤 되어서 겨울 하늘은 벌써 어두워지는 중이다.

    「나으리, 가시지요.」
    다가간 나에게 문규가 말하더니 먼저 등을 돌렸다.
    문규가 은신처를 안내하려는 것이다. 제중원에 피신 해 있다는 것을 안 허신행이 은신처를 제공 해주겠다면서 문규를 보낸 것이다.

    문규가 앞장을 섰고 재석은 뒤를 따르면서 미행을 감시한다.
    섣달 매운 날씨여서 어둑한 행인들은 모두 사지를 웅크린 채 종종 걸음을 치고 있다.

    바쁘게 걷던 내 입에서 문득 탄식이 터져나왔다.
    조선 땅 도성(都城) 거리를 명색이 중추원 의관이란 자가 걸으면서 미행을 조심하는 세상인 것이다. 더욱이 그 미행이 임금이 보낸 정보기관원인지, 또는 일본인 정보원, 박영효 일당일수도 있다니...

    문규도 미행을 따돌리려고 그러는지 간 길을 또 가고 골목으로만 여러번 돌고 꺾다가 마침내 들어선 곳은 남산 근처의 제법 번듯한 기와집이다.
    이 곳은 무반(武班)이 많이 사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상인, 일본인도 모여살고 있다.

    골목 안의 끝집이어서 위치가 아늑했고 대문도 단단했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으므로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행낭채의 불이 환했다.

    그 때 어둠에 덮인 마당으로 여인 하나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