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21) 

     「놈들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다음날 새벽, 내가 묵는 사가(私家)로 은밀히 찾아온 박무익이 지친 얼굴로 말한다.

    지난 밤부터 눈이 내려서 박무익의 옷은 젖었다.
    불빛을 받은 박무익의 얼굴도 물기에 번들거리고 있다.
    「황제 직속의 이익치군(軍) 말씀이오.」

    아직 황제 직속의 비밀 군사 정보조직의 명칭은 모르고 있었으므로 수장(首長)의 이름을 따서 이익치군이라 부르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은 박무익이 윗목의 벽에 등을 붙이더니 길게 숨을 뱉았다.

    「김시진을 처형한 후에 놈들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수하 셋을 잃었습니다. 놈들은 무술의 고수일 뿐만 아니라 정보력도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대한제국의 모든 권력기관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오.」

    당연한 일이다. 황제가 뒤를 받쳐주는 터라 어느 누구의 제지를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박무익을 보았다.
    한때 의병으로 활약했던 박무익은 이제 매국노, 반역자에 대한 응징자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익치군을 만나 쫓기는 입장이다.
    내 시선을 받은 박무익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나으리, 시중(市中) 소문에 박영효가 곧 정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시중의 아이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번 나돈 소문이었으므로 나는 듣기만 했다.
    박무익이 똑바로 나를 보았다.

    「나으리께서 박영효를 중추원 의장으로 영입하자고 대신임용후보자로 추천한다는 소문도 다 났습니다.」
    「중추원 의장으로 말이오?」
    내가 되물었더니 박무익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되면 박영효는 면죄부를 받게 될테니 황제를 폐위 시킬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박영효 뒤에는 일본이 있으니까요.」
    「말은 쉽지만 박영효가 의장이 되겠소? 황제가 승인하지 않을테니까 말이오.」
    「하지만 나으리는 대신후보 명단에 박영효를 넣어 황제께 건의 하실 것 아닙니까?」
    「그럴 작정이오.」

    「나으리와 박영효가 서로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또 소문이오?」
    「황제가 거부할것이 뻔한데 대신임용자 명단을 올린다는 것은 박영효를 부각시키려는 공작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듣기는 어려운 소문이군.」
    「박영효가 대통령이 되면 나으리는 학부대신은 맡게 된다는군요.」
    「아버님이 기뻐하시겠소.」

    그러자 박무익이 입맛을 다셨다.
    「나으리, 시중 소문이 우스개 같아도 시대 흐름을 어느 정도 비치고 있소이다.」

    내 시선을 잡은 박무익이 말을 잇는다.
    「백성은 아직도 박영효를 역적으로 매도하고 황제에 대해서는 동정적입니다.」
    「......」
    「탐관오리와 무능한 관료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

    「일본이나 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도 있지요. 대한제국 황제는 백성을 위해 노심초사 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 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더구나 국모까지 무자비하게 시해 당하지 않았습니까? 동정심이 몰리는건 당연하지요. 그러니...」

    숨을 고른 박무익이 다시 이었다.
    「나으리, 박영효를 내세우는 건 황제에게 역습의 기회를 주게 됩니다. 황제가 파놓은 함정에 제 발로 들어가는 꼴입니다.」

    박무익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