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⑰

    「그것이 정말입니까?」
    하고 내가 물었지만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이미 소문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안재훈이 붉은 얼굴을 펴고 짧게 웃었다.

    「허어. 내장원의 돈이 그렇게 해서 쌓여지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본인 고리대금업자들이 너도 나도 달려드는 바람에 군수(郡守) 가격이 5천원쯤 올랐습니다.」
    「......」
    「관찰사는 한때 15만원 선이었다가 일본놈들 때문에 지금은 25만원이 되었구만요.
    그래서 관찰사 만드는 돈은 다 일본놈이 대고 있지요.」

    그러더니 안재훈이 정색하고 나를 보았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경쟁이 치열해서 삼사일이면 임자가 결정 됩니다. 이공께서 결심을 하신다면 제가 서둘지요.」

    그리고는 얼른 덧붙였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공께선 가만 계시면 됩니다. 임지로 따라간 제 수하가 다 알아서 처리 할테니까요. 저한테 빌리신 돈과 이자를 제하고 남은 돈은 모두 드릴것이며 그 결산도 분명히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더니 안재훈의 얼굴이 환해졌다.
    「잘 하셨습니다. 반년만 내려가 계시면 5만원 원금과 이자 제하고 5만원은 가져 오신다고 장담 해드릴 수가 있습니다.」
    「곧 연락 드리지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내가 말했을 때 안재훈의 이맛살이 모여졌다.
    「그럼 아직 결심하신 것이 아닙니까?」
    「예, 제가 부친과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머리를 끄덕인 안재훈이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부친께서도 반대 하실 리가 없지요.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안재훈은 가게로 통하는 안채 후문 앞까지만 나를 배웅하고 돌아갔다.

    포목상 안을 말없이 빠져 나오면서 나는 문득 산처럼 쌓여진 영국산 옥양목과 일본산 씨이팅 옷감에다 불을 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조선산 무명은 이제 시골 농부나 입는 옷감으로 전락이 되어서 이곳에서는 취급도 하지 않는다.

    「황제 가격은 얼마나 될까?」
    종로 거리로 나온 내가 불쑥 물었을 때 옆을 걷던 재석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잠자코 걸었더니 한참만에 재석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곧 없어질 자리인데 누가 사겠습니까?」
    이번에는 한동안 내가 못 알아듣고 걸음을 옮겼다가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는 재석을 보았다.
    재석의 눈을 보면 수심을 알 수 없는 깊은 늪이 연상된다.

    30대쯤의 나이에 건장한 체격, 말수도 적어서 가끔은 옆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시선을 볼에 맏은 재석이 말을 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삼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조선은 안에서부터 썩어 무너지고 있으니까요.」

    재석은 사랑채 밖에서 나와 안재훈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리고 내 옆에서 여러 사건을 같이 겪었으니 나름대로 판단을 했으리라.

    다시 발을 뗀 내가 물었다.
    「내가 군수가 되어 임지로 간다면 그댄 따라 오겠나? 내가 벼슬 한자리 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는 덧붙였다.
    「물론 돈은 받지 않겠어.」

    그때 재석이 머리를 들고는 소리 없이 웃는다.
    그것을 본 내가 따라 웃는 순간에 문득 목이 메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