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⑯

     중추원 의관(議官)은 정9품의 말직(末職)이었지만 대신(大臣) 임용 후보를 천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중추원은 대신 후보를 선별하고 있었는데 물론 최종 결정은 황제의 몫이다.

    중추원 의관들과 회의를 마치고 종로의 옥양목 상인 안재훈의 가게로 들어섰을 때는 오후 3시쯤 되었다. 안재훈은 영국산 옥양목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 일본에서 대량생산이 되는 씨이팅도 들여와 팔고 있었는데 조선산 무명은 이제 취급하지 않았다.

    가게 하인의 안내로 안채에 들어선 나는 기다리고 있던 주인 안재훈을 만났다.
    안재훈은 50대의 장년인데 대를 이어 종로에서 포목상을 해온 거상(巨商)이다.
    황해도 평산(平山) 출신으로 누님 댁과 교분이 깊은데다 아버지가 안재훈의 망부(亡父) 묘자리를 간택해준 인연도 있다.

    그래서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두어번 와본 적이 있었으니 안재훈과는 구면이다.
    따라온 재석을 사랑채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는 주인 안재훈과 사랑방에서 둘이 마주앉았다.
    오늘은 안재훈이 하인을 보내 만나자는 연락을 한 것이다.

    먼저 안재훈이 인사를 했다.
    「먼저 의관직에 오르심을 축하드리오.」
    안재훈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춘부장께서 얼마나 좋아하셨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나도 정중하게 답례했다.

    나보다 20여년 연상이며 산전수전 다 겪은 거상이다.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살찐 안재훈의 얼굴을 보았다.
    방안에서 은근한 향내가 맡아졌다. 온돌방이었지만 가구는 모두 수입품이다.
    일제 탁상시계에 장식장은 청에서 들여온 것 같다.

    그때 안재훈이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의관이 되셨으니 이제 관로(官路)를 달리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이공께서는 9품 의관이 어울리지 않으십니다. 이제 발을 얻으셨으니 기회를 잡으셔야 합니다.」

    안재훈이 만나자는 이유를 말하려는 것 같았으므로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나 아직 윤곽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안재훈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춘부장님께 은혜를 입은 적도 있고 해서 이공께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군수(郡守) 자리가 두 개 나왔습니다. 현령(縣令) 자리는 여러 개 비었지만 이공께서는 군수가 적합합니다.」

    안재훈이 열 띤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군수는 종4품으로 과만을 채우시기 전에 다시 부사나 목사로 오르실 수가 있지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셔야 됩니다.」

    내 가슴이 조금 전부터 거칠게 뛰고 있다.
    안재훈의 의도를 안 것이다.
    그때 안재훈이 정색하고 말했다.

    「군수 자리는 5만원입니다. 제가 이공께 이 돈을 빌려 드리지요.
    아마 석달 안에 5만원은 빼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하나 이공께 딸려 임지로 보내 드릴테니 가만 계시면 알아서 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안재훈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반년 쯤 지나면 적어도 밑천 제하고 5만원은 뽑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돈을 조금 더 보태면 더 나은 직급으로 오르실 수가 있지요.」

    바로 매관매직이다.
    그토록 매관매직을 비판했던 나에게 이런 제의가 들어 온 것이다.
    내 표정을 본 안재훈이 위로하듯 말한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 돈은 황제한테도 올라가니까요.
    황제의 승인 없이 어찌 군수로 부임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