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⑦ 

     다음날 아침, 다시 광장에 나간 나는 놀라 숨을 죽였다.

    광장에는 7,8천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어제보다 두배는 더 모였다.

    나를 알아본 군중이 환호성을 질러 맞는다.

    「황국협회놈들을 쳐부숴라!」
    누군가가 목청껏 소리쳤고 수천 명의 군중이 따라 외쳤다. 인파가 가득 차 있어서 통행이 막혔다.

    나는 군중들에 밀려 첫 번째로 연단에 올랐다. 만국협회 의장 고영근과 현세창 등 간부들의 얼굴도 단 아래에 보였다.

    「여러분, 우리는 어제 황국협회의 습격을 받았지만 결단코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소리치자 천지를 뒤흔드는 것 같은 함성이 일어났다.

    그렇다. 이것이 민의(民意)이며 대세(大勢)인 것이다. 어제 황국협회의 습격은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 되었다.

    내가 연설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 윤치호가 다가왔다.
    「우남, 궁에서 전갈이 왔어.」

    추운 날씨였지만 연설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내가 숨만 골랐고 윤치호가 말을 잇는다.
    「황제께서 우리 요구를 다 들어주시기로 했네. 헌의6조를 즉시 시행하실 것이고 독립협회를 다시 부활시킨다고 하셨어. 그리고 황국협회는 폐지 시키겠다네.」
    그 말을 내 옆에선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간부들도 다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치듯 물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보부상 놈들은 조금 전에 궁에서 보내준 음식으로 밥을 처먹고 있었소. 거짓말이오!」

    옆쪽에서 다른 사내가 말을 받았고 군중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수뇌부들은 이미 농성을 풀기로 결정을 한 것 같았다.

    그때 윤치호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말을 잇는다.
    「황제께서 곧 중추원을 성립하시고 의관으로 50인을 임명 하실걸세. 그 50인 중 우리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17인을 배정 받았네.」

    내 시선을 받은 윤치호가 쓴웃음을 짓는다.
    「나머지 33인 중 황국협회가 16인, 황제가 고르신 인물이 17인일세.」
    「보부상놈들이 16인이란 말입니까?」

    나도 쓴웃음을 짓고 되물었다.
    「그럼 황제 직계가 33인이 되었습니다. 17인으로 뜻을 펼 수나 있겠습니까?」

    외면한 윤치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를 늘어뜨린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몸을 돌렸다.

    박무익과 광장에서 나오는 내 옆으로 허기영이 다가왔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허기영의 안색은 창백했다.

    「이형, 제중원의 의사들을 잘 아시지 않소?」
    하고 허기영이 물었으므로 내가 머리의 상처부터 보았다. 이마를 감은 붕대에 피가 배어나와 있다.

    「압니다. 치료하려면 나하고 같이 갑시다.」
    발을 떼면서 말했더니 허기영이 서둘러 옆에 붙었다.
    「어제 여동생이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소. 제중원에 가야 병신을 면할 것 같소.」

    동생이라면 오선희 아닌가? 걸음을 멈춘 내가 말했다.
    「어서 데려오시오.」
    「이 근처에 데려다 놓았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하더니 허기영이 두 다리를 허공에 띄워 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달려갔다.

    「그 여학생 연사 아닙니까?」
    옆에서 들은 박무익이 묻더니 헛기침을 했다.

    나는 흩어지는 군중 속에 서서 문득 수잔을 떠올렸다.

    수잔이 떠난 후에 나는 제중원에 발길을 끊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