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⑥

     

    오선희의 연설은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수십 번 집회를 치뤘지만 여자 연사는 처음이기도 했다.
    군중들은 조용해졌고 그래서 오선희의 낭랑한 목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오선희는 부패한 관리들을 성토했으며 황국협회의 배후에 일본군이 있다고 주장했다.
    군중들은 오선희의 말이 끝날 때마다 환호했는데 그 내용보다 여성의 당돌함에 갈채하는 것 같았다. 오선희의 미모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연설을 마친 오선희가 연단을 내려갔을 때 내 옆에 서있던 허기영이 말했다.

    「이형, 오선희는 내 외사촌 동생이요. 많이 가르쳐주시오.」

    「훌륭한 동생을 두셨소.」

     얼떨결에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뭘 훔치다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선희가 연설하는 내내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기영이 말을 이었다.

    「선희는 이형의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희 연설이 이형을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부끄럽소.」 

    오선희는 이제 군중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고 박용만의 소개로 다른 연사가 연단으로 올라간다. 추운 날씨여서 군중들은 무리지어 뭉쳐있었다.  

    오후 6시, 인화문 밖은 차츰 어둠이 덮여지는 중이다.

    그때 내 옆으로 박무익이 다가왔다. 

    「저녁을 가져왔으니 저쪽 골목으로 가시지요.」

    「그럼 나도 저녁을 먹고 오지요.」

    하고 허기영이 몸을 돌렸으므로 나는 박무익을 따라 군중을 헤치고 나아갔다.  

    이때쯤 되면 모두 지치고 허기가 진다.
    술국, 떡장수들이 가장 바쁜 때이기도 하다.
    어수선해진 군중 사이를 빠져 광장 끝쪽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와앗!」

    아래쪽에서 함성이 울리더니 곧 어지러운 외침이 이어졌다. 비명까지 울린다.
    「습격이다!」  

    누군가가 소리쳤을 때 이번에는 위쪽 길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와아앗!」 

    황국협회인 것이다. 눈만 부릅뜨고 있는 내 팔을 잡아챈 것은 박무익이다.

    「이공! 이쪽으로!」 

    인화문 밖 광장은 세갈래길로 나뉘어져 있다.
    박무익은 나를 처음 함성이 울린 아래쪽 길로 끌었고 뒤를 수하들이 따른다.
    군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고 있었는데 이제 어둠이 덮인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과 고함, 부르는 소리에 울음소리까지 들린다.

     내 앞으로 몽둥이를 치켜든 사내 서너명이 내달려오더니 군중들을 무작정하고 두들기기 시작했다. 비명이 어지럽게 일어났다.  

    「대들지마라!」

    내 옆에선 박무익이 소리쳤고 우리는 적진을 뚫고 가는 것처럼 거슬러 올라갔다.

    몽둥이가 날아와 내 어깨를 쳤고 허리도 스쳐갔지만 다행히 끈질기지는 않다.
    작정을 하고 두들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발을 떼면서 이를 악물었다.
    사방은 외침과 비명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왠지 두렵지는 않다.
    대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아아, 분하다!」

    내가 와락 소리쳤다.
    그 순간 눈이 뜨거워지더니 목까지 메었으므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몰려드는 무리는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일행은 놔두었다.
    뜸해질수록 그냥 스치고 지나갔다.
    이윽고 우리는 주택가로 들어가 한적한 골목의 담장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섰다. 
     

    기석까지 포함해서 7,8명은 되었다.

    멀리서 아직도 함성과 비명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