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① 

     다가선 이시다 주우로(石田十郎)가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이공,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제 이시다는 나에게 미곡상 시늉은 하지 않는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이시다의 뒤쪽에 한 사내가 서있다.
    기석(奇石)이 미국 공사관으로 옮겨간 후에 채용한 통역이다.

    정동교회 뒤쪽에 작은 정자가 한 채 세워져 있었는데 우리는 기둥 옆에서 마주보고 섰다.
    오늘은 이시다가 교회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이공을 만나고 싶다는 분이 있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이시다가 대뜸 본론을 꺼내었다.
    내 시선을 받은 이시다가 말을 잇는다.
    「박공이십니다. 먼저 박공이 보낸 측근을 만나 보시지요.」

    박공이라면 박영효다.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의 주역이었으나 실패하고 두 번이나 일본으로 망명한 개혁파의 거물, 지금은 시모노세키에 있다던가?

    내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난 뵙지 않겠소.」

    이시다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으므로 나는 다시 웃었다.
    「아직 누구한테 매인 몸이 되기는 싫습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말은 감탄한 듯 들렸지만 이시다의 표정은 굳어져 있다.
    박영효는 1861년생이니 나보다 14년 연상인 서른여덟, 지금의 내 나이때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시다면.」
    이시다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박공께서 이공께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뭡니까?」
    「약소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시다가 발 밑에 놓았던 검정색 가죽가방을 난간 틈 사이에 놓았다.

    「미국 달라로 바꿨습니다. 2백불입니다.」
    거금이다.
    내 가정교사비 10개월분이며 2년 양식값은 된다.

    내가 여전히 웃음 띈 얼굴로 이시다를 보았다.

    「일본 군부에서 나온 돈입니까?」

    이시다는 눈만 껌벅였고 내가 말을 이었다.
    「대감께 고맙다는 말씀이나 전해 주시지요.」

    박영효한테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돈을 보낸 것은 불쾌했다.
    그 돈이 박영효 주머니에서 나왔다면 또 모른다.

    누구 돈으로 나를 매수하려고 드는가?

    무안해진 이시다가 입맛만 다시고 있었으므로 내가 위로하듯 말했다.
    「이시다공, 목표는 같지만 방법이 다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이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직 처세에 부족하며 너무 자존심을 내세운다는 것도 안다.
    겸손하지 못하고 포용력이 부족한 성품이라는 것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타협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인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시다와 헤어진 내가 교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제중원에서 보낸 김육손이가 와 있었다.
    내 옆으로 다가온 육손이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 선생님, 화이트양께서 저한테 심부름을 보내셨습니다.」

     육손의 아직 자르지 않은 상투가 바짝 다가왔으므로 나는 숨을 삼켰다.
    「저기, 수잔양께서 아침에 제물포로 떠나셨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수잔양은 상하이의 병원으로 임지를 옮기셨다고 합니다.」

    나는 육손이 시선을 들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육손도 알고 화이트도, 선교 당국도 다, 그래서 수잔을 상하이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