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26)

     

    잠자리에서 정(情)이 들어있는지 아닌지는 상대방이 느끼는 것 같다.
    감추려고 애쓰면 더 그렇다.

    내가 아내의 몸에서 떨어졌을 때 둘 사이의 공간으로 찬바람이 지나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아내와 몸을 섞으면서 수잔의 몸을 떠올렸다.
    아직 수잔의 알몸을 보지 못했지만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아내는 잠자리에서 숨소리도 죽이는 유형이다.
    터지는 순간이 오면 베개 귀퉁이를 입으로 물기도 한다.
    그런데 수잔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오늘 폭발했을 때는 수잔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정을 향하고 누웠을 때 아내가 한 말에 온몸이 굳어졌다.

    「어째 달라진 것 같소.」

    가쁜 숨을 고르며 아내가 말을 잇는다.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소?」

     

    아내는 음죽(陰竹) 박(朴)씨로 나하고 동갑이다.
    15세때 혼인했으니 올해로 8년이 되었고 2년 전에 아들 봉수를 낳아서
    나 또한 늦둥이를 본 셈이다.
    아내가 머리를 돌려 나를 보았다.

     

    「동네 사람들 말이 봉수 아버지는 개화당 선봉이라고 합디다.
       어느 등짐장수는 당신이 곧 역모로 잡혀간다고 했다는거요.」

    나는 입맛만 다셨고 아내의 말이 이어졌다.

    「며칠 전에 어느 상민 두 놈이 집 앞을 지나다가 봉수한테 네 아비는 곧 칼을 맞아 죽는다고 했다네요. 옆에 있던 복례가 악을 썼더니 웃고 가더랍니다.」

     

    벽에 붙여진 호롱불이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내가 대꾸하지 않았더니 아내도 입을 다물었다.

    떠도는 것 같은 내가 불안했을 것이다.
    진득하게 집안에 붙어있지 못하고 소문만 흉흉하게 들리니 누가 좋다고 할 것인가?

     

    개화당 일을 한다고 해서 쌀이 들어오거나 나뭇단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아내가 보기에는 뜬구름 잡는 일일 것이리라.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더 유람이 많아졌다.
    아내는 아버지의 바깥 출입을 유람(遊覽)이라고 부른다.
    비꼬는 것이다.

    아버지는 말씀을 안 하시지만 아내에게 냉대를 받고 계신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있기가 더 거북하신 것이다.

     

    그때 아내가 불쑥 물었다.

    「당신, 여자 있으시오?」

    나는 숨만 죽였고 아내의 말이 이어졌다.

    「제중원의 양년들은 사내를 서넛씩 거느리고 있다던데, 그 속에 끼셨소?」

    「그만 하시게.」

     

    내가 낮게 꾸짖었으나 그칠 아내가 아니다.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 아내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헝클어져서 이마와 한쪽 볼을 덮었다.

    「첩을 들이려면 백석지기나 되어야지,
    양년한테서 달라 얻어 사는 주제에 당치도 않는 일 아니오?」

    「그만해.」

     

    나도 일어나 앉아 아내를 노려보았다.

    그렇지.
    몸을 떼었을 때 찬바람이 가르고 가더니 이렇게 되었다.

    그때 수잔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화가 난 내가 일부러 끄집어내었다.

     

    내 시선을 받은 아내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한다.

    「나도 소문을 들었소. 당신이 제중원의 양년하고 좋아져서 상투까지 떼어주었다는 것을 말이오.」

    그렇구나. 버지니아 화이트를 말하는 것이다.

    수잔을 들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나는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때 아내가 눈을 치켜떴다.

    「유람 다니는 시부나, 양년하고 붙어먹는 서방이나, 다 같은 족속이지.」

    나는 그때 아버지를 대하는 아내의 참모습을 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