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⑮

     진료실로 들어선 나를 보더니 에비슨이 빙긋 웃는다.
    「대화 끝나셨소?」
    화이팅과의 교육이 끝났느냐고 묻는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앞쪽 의자에 앉았다.
    제중원(濟衆院) 안이다.
    에비슨의 시선을 받은 내가 입을 열었다.

    「머리를 자르고 싶소.」

    상투란 단어를 만들기 어려웠으므로 내가 머리위의 상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에비슨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이오?」

    놀랐는지 조선어 대신 영어를 쓴다.
    그러더니 이제는 또박또박 조선어로 물었다.

    「아니, 단발령도 철폐 되었는데, 왜 그러시오?」

    그렇다.
    아관파천 후에 임금은 단발령을 거둬들여 성난 민심을 무마시켰다.

    쓴웃음을 지은 내가 말했다.

    「부모께는 죄송하나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제거하는 것 뿐이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굳어져있는 에비슨을 향해 내가 말을 이었다.

    「자, 어서 잘라주시오.」

    「그러지요.」
    자리에서 일어선 에비슨이 가위와 빗을 챙겨왔다.
    잠깐 방에 들어섰던 의사 하나가 그것을 보더니 서둘러 나간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화이팅을 비롯한 의사 서너명이 몰려왔다.

    「리, 자르십니까?」
    하고 화이팅이 물었으므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화이팅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그때 여의사 하나가 나에게 말했다.

    「그 자른 머리는 저한테 기념으로 주세요.」
    그러자 내가 화이팅을 보았다.
    「닥터, 당신한테 드리고 싶은데.」
    「아, 난 싫습니다.」

    화이팅이 바로 머리를 저은 순간에 상투가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 방안이 조용해졌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
    상투를 자른 에비슨도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그때 내가 영어로 말했다.

    「조선인 이승만의 목이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으므로 나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런데 얼굴 근육이 굳어졌는지 일그러진 느낌이 든다.

    「내가 목을 주웠네.」

    허리를 굽힌 화이팅이 상투를 집어 들면서 웃어보인다.
    에비슨이 다시 가위질을 했고 방안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렇다.
    조선인 이승만의 머리가 떨어진 것이다.

    학당에 들어올 때 껍질을 다 벗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남아있던 조선조에 대한 미련은 상투와 함께 떼어졌다.
    나는 적극적인 개혁에 나서겠다는 내 스스로의 약속으로 상투를 자른 것이다.
    자진해서 뛰어들었다.

    내 상투는 아까 달라던 여의사가 받더니 소중하게 헝겊에 싸들고 나갔다.
    에비슨이 상투가 잘린 내 머리를 다듬을때까지 화이팅은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자, 리, 어때요?」
    하고 에비슨이 거울을 건네주었으므로
    나는 상투가 잘린 내 얼굴을 처음 보았다.

    낯선 사내가 거울 속에 박혀 있었다.
    그 사내는 외롭게 보였다. 굶주리고 지친것도 같다.

    그때 화이팅이 말했다.
    「양복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머리네요.」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에비슨과 화이팅에게 절을 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그때 내 옆으로 사내 하나가 다가섰다.

    「나으리, 나으리 아니십니까?」
    놀란 듯 눈을 치켜떴던 사내가 와락 눈물을 쏟더니 내 팔을 움켜쥔다. 기석이다.

    「나으리, 내 처가 풀려났습니다요. 모두 나으리께서...」
    내가 아니다. 이충구가 나 대신 힘써 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