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다국적기업 세계화 성공사례 학습투어 / 중국 칭다오>

    세계인에 사랑받는 기업되기
    ‘그대, 내 사랑을 받아줘요!’
        
                                                       김 나 영 (서울대 불어교육과, 한국선진화포럼 홍보대사 5기)

  • ▲          김나영.
    ▲          김나영.

    공자-맹자의 나라 산둥성(山東省), 지금도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유교의 고향은 인천공항에서 1시간 반 거리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산둥반도 최대의 도시 칭다오(靑島)는 수십 층짜리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국제 무역항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칭다오의 번화가에는 삼성, GS, 신한 등 한국 기업들의 간판들이 잇따라 지나가고, 소나타, 아반테 등 현대가 만든 차들이 줄지어 달린다.
     중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 1위로 뽑혔다는 칭다오는, 1992년 한중수교 이전부터 진출한 한국 기업이 3천여 개, 교민이 5만여 명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많은 도시다.
     외국이라기보다 이웃 도시 같은 분위기는 옛 이름 ‘신라방’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신라방의 중심지였던 산둥반도, 그 중에서도 칭다오는 지금 ‘21세기의 신라방’이 아닐까.
     이처럼 유사 이래 뿌리 깊은 한중 역사는 제쳐두고라도 1천년의 시차를 두고 이어져 오는 양국의 무역 경제관계는 글로벌시대의 무한경쟁 속에서 과연 제로섬(zero-sum) 게임일까, 윈윈(win-win) 게임일까. 

  • ▲ 칭다오 번화가. 소나타, 아반테가 줄줄이 달린다.
    ▲ 칭다오 번화가. 소나타, 아반테가 줄줄이 달린다.


     칭다오 한인회 전임회장 최영철 씨는 “칭다오에 한국 기업들이 정착하는 데에는 조선족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세계 어느 곳에 진출하더라도 토착세력, 현지인들과의 협력이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라며 지난 20년간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회고했다. 

     그러나 ‘저렴한 임금’의 매력에 끌려 가깝고 인연 깊은 중국 대륙에 너도나도 몰려간 한국 기업들은 이제 전성기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2006년 최대 19억 달러까지 투자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채 2008년엔 3억 달러로 급전직하했다. 그동안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거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저가의 노동력과 감세 혜택만을 의지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물갈이 된 탓이다.
     하지만 중국당국의 정책변화와 경영조건의 악화에도 현지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아직 많다. 이들의 장기전이 가능했던 요인은 무엇일까. 또 세계화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칭다오의 대표적 중국기업인 ‘하이얼(Haier) 전자’와 한국기업 ‘신도리코’를 찾았다.

     

  • ▲ 칭다오에 있는 중국 최대전자기업 '하이얼 전자' 생산공장.
    ▲ 칭다오에 있는 중국 최대전자기업 '하이얼 전자' 생산공장.


    ‘대륙의 삼성’ 하이얼(Haier) 전자, ‘세계시장 점령 키워드는 소비자’

     하이얼 전자는 중국 최대의 가전업체로 ‘중국의 삼성’이라 불리는 기업이다. 현재 중국 내 가전시장 점유율이 30%에 이른다.
     하이얼은 산둥성 칭다오에서 집단소유제 기업으로 출발해 1984년 한때 파산위기를 맞기도 했다. 현재는 미국, 이탈리아, 알제리 등 해외에 13개의 생산 공장을 세우고 해외 160여 개국에 수출하면서, 지난 2009년 세계 브랜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사업 초반에는 냉장고를 전문 생산하는 기업이었지만 점차 사업규모와 영역을 확장하면서 현재는 냉장고, 텔레비전,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서부터 휴대전화, 영농 기계 등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이얼 전자는 현재 세계 4대 가전업체로 꼽히고 있으며, 13조원의 자산 가치를 자랑하는 중국 최대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이얼 전자가 개발한 다양한 가전제품들과 이른바 유비쿼터스 기술을 주택 내부 시설에 적용한 U-home의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며, 기계나 공학, 기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도, 기술적 측면에서 하이얼이 삼성보다 앞서가지는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쉽사리 내릴 수 있었다.
     특히 U-home의 전동식 수납장이라든가 온도를 감지하는 세면대 거울 등은 대부분 2, 3년 전 삼성물산의 미공개 모델하우스를 인턴 자격으로 견학하면서 이미 봤던 것들이었다. 또한 삼성의 U-home 모델하우스에서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음식의 종류와 유통기한까지 인식해 스크린 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 등 이외의 더 발전된 유형의 기술도 선보였으므로, 하이얼이 자랑하는 기술들이란 조금은 진부하게 다가왔다.

     그런데도 세계시장 점유율은 하이얼 전자가 1위라니, 이것만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전자제품으로는 삼성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견학 도중에 이런 정보를 마주했을 때 처음 보이는 반응은 모두 이러했다. “삼성이 아니라 하이얼이 1위라고? 이거 사기 아닌가?” 

    소비자 마음 훔치기...까르멘처럼 달콤하게, 카사노바처럼 강렬하게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하이얼의 수출 전략은 ‘명확한 타기팅(targeting)’이다.  제품 하나를 만들 때 그 제품이 목표하고 있는 지역문화권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제품명은 따로 있지만, 모든 제품이 제각기 별명을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 세탁기’, ‘미국 에어컨’, ‘인도 냉장고’, ‘이탈리아 냉장고’....... 무엇 하나 ‘적당히 좋은 제품’이 없다. 무조건 좋은 기술로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는, 각 문화가 해당 제품을 사용할 때 가장 필요로 할 만한 특징들을 반영해 ‘특수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하이얼의 분명한 목표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파키스탄 세탁기는 삼성이 만든 세탁기보다 재질이나 성능 면에서 뛰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파키스탄에서는 그 세탁기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슬람 전통 의상을 동시에 12벌까지 세탁할 수 있다는, ‘파키스탄 사람들만을 위한 세탁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에어컨’은 이미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형 모델이다. 몇 십 년 전에 사서 실컷 쓰다가 중고로 판다고 헐값에 내놓는대도 가난한 자취생 정도가 힐끗거릴 것 같다. 그런데 이 ‘미국 에어컨’은 미국 뉴욕에서 7시간 만에 자그마치 7천대가 팔렸다고 한다.
    이유는, 미국 도심가에는 작은 공간을 활용해 수납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저성능 저가의 소형 에어컨을 선호하는 소비문화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을 적용해 만든 ‘미국 에어컨’이 뉴욕에서 전폭적인 사랑을 받은 것이다.

  • ▲ 뉴욕서 7시간만에 7천대가 팔린 '미국 에어컨'.
    ▲ 뉴욕서 7시간만에 7천대가 팔린 '미국 에어컨'.
     
  • ▲ 냉장고 문에 스크린 다이어리를 장착한 '이탈리아 냉장고'.
    ▲ 냉장고 문에 스크린 다이어리를 장착한 '이탈리아 냉장고'.

     

     

     

     

     

     

     기술과 실력은 어느 정도 주어진 것으로 보고, 발전을 도모하면서도 가진 기술을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해 폭넓은 소비자 층을 확보한다는 것이 하이얼 전자의 마케팅 포인트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세상 모든 남자들이 만띠야를 풀어헤친 그 모습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매혹적인 까르멘, 수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카사노바가 하이얼의 마케팅 전략에 겹쳐 보였다. 어떤 종류의 남자도 손쉽게 유혹해내는 까르멘처럼, 하이얼은 어떤 종류의 소비자라도 그 마음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냉장고 문에 메모지를 붙이는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메모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과 메모리를 장착한 냉장고를 선보였다. 고구마를 많이 먹는 중국 산둥성 지방 사람들에게는 고구마 세척 기능이 있는 세탁기를 팔았다. 이런 소비자 문화별 ‘러브콜’이 있었기에 시장점유율 1위가 가능했던 것이다.
     사랑하면 보이고, 알면 통한다고 했던가. 상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차별적인 전략은 만장일치의 ‘yes’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기본이다.


    토털 솔루션 신도(Sindoh), ‘일하고 싶은 기업 되면 세계 인재가 모여든다’

     신도리코는 1960년 서울, 복사기를 만드는 기업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복사기, 프린터, 스캐너 등 각종 사무기기와 사무용지, 사무실 내의 모든 전자기기와 용품들을 총괄 생산 공급하는 토털 비즈니스 솔루션(total business solution) 기업을 표방한다. 칭다오에는 2개의 공장이 설치 가동되고 있으며, 2010년에는 3,4기 공장도 준공 계획에 있다.
     신도리코 현지공장 인력 중 2천여 명은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유리창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중국 사무원들의 모습이 서울의 여느 사무실과 다르지 않았다. 프린터 등 사무기기의 부품을 직접 칭다오에서 찍어내고 조립하는 생산 공장의 벽면에는 ‘절대 안전, 품질 최고’ 등의 구호가 한자로 적혀 있었다.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얼마든 대화할 수 있다는 동질감이 새삼 밀려왔다.
     신도리코는 넓은 중국 땅덩어리 각지에서 모여드는 직원들을 배려하기 위해 사원기숙사도 대규모로 마련했다. 사내 식당도 현지중국인의 입맛에 맞춘 메뉴가 주를 이룬다. 공장 및 사무실도 친환경 소재로 꾸몄다. 각종 휴게시설에는 분수대, 조경, 대규모의 캠프파이어가 가능한 광장 등의 시설이 눈에 띄었다.
     또한 직원과의 의사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지도인력은 중국어를, 현지 고용 인력은 한국어를 배우도록 배려하고 있다.
     칭다오 신도리코 동사장/총경리 정광오 씨는 “중국 진출에 있어 저임금이라는 것이 분명 매력이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중국 내에서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인식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 평균임금보다 다소 높은 수준의 임금으로 현지인을 고용하고 사원 환경 및 복지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며 “의사소통만 잘된다면 우수한 현지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다국적기업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중국 투자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재투자가 가능했던 신도리코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신도리코 역시 하이얼 전자와 같은 전략을 통해 많은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신도리코 역시 각 문화권별 특징을 반영한 특수화 상품을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품에 붙여진 ‘Parisian’, ‘Qingdao’라는 지명은, 그 제품이 어떤 소비자 층을 타깃(target)으로 하고 있으며 제품에 반영된 특징이 무엇인지를 반영한다. 다만 이 제품명은 사내에서만 사용되고 공식적으로는 다른 모델명을 사용한다. 그 사업영역은 사무기기로 하이얼 전자와 전혀 달랐지만, 전략만큼은 하이얼 전자의 경우와 똑같았다.

  • ▲ 칭다오 중심가에 서있는 5.4광장 기념탑.
    ▲ 칭다오 중심가에 서있는 5.4광장 기념탑.

     

    기회의 땅 중국, 저가 시대는 가고 ‘인력과 시장의 현지화’가 경쟁력

     두 기업의 성공적인 세계화 사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교훈이 있다. 그 국적이 한국이든 중국이든, 앞으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무대가 되는 시대에는 지역문화를 아는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기업, 나의 needs와 wants를 반영하는 기업의 제품에 소비자는 끌리게 되어있다.
     노동비용 및 원료비용 절감과 면세, 환경규제 등은 점점 더 기업을 압박해오며, 장기적으로 발전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높은 기준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도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명백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부분들은 앞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어느 나라에 진출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국제적 기준이 될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이윤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답은 바로 소비자의 문화이다. 한 제품을 만들 때 분명한 목표소비자를 정하고 그 소비계층의 문화 코드를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아무리 제품이 우수해도, 소비자의 감성에 와 닿지 않는 제품은 팔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해당지역 생활문화의 needs를 반영한 냉장고, 복사기를 만들 때 소비자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부실 한국기업들이 보따리를 싸매고 하나둘 떠나버린 칭다오에는 빈 공장들만 즐비한 채 제 주인을 기다린다. 안개 자욱한 도심을 넘어서면 건물 하나 없는 도로 주변 풍경이 사뭇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임금과 세제 혜택만을 찾아서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저가형’ 기업은 더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인력의 현지화와 세계 시장 개척에 있어 제품 개발의 현지화에 주력한다면, 칭다오 뿐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는 한국기업의 미래는 여전히 ‘맑음’이다.
     칭다오를 이륙하는 비행기 아래 멀어져 가는 산둥반도, 지도를 보니 긴 목을 빼고 한반도를 쳐다본다. 여전히 한국을 부르는 기회의 땅....... 알싸한 ‘칭다오 맥주’의 뒷맛이 달콤하다.♦

    글-김나영 sweetme234@naver.com
    사진-박혜빈 (서울산업대학교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한국선진화포럼 홍보대사 5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