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일요일마다 술에 잔뜩 취한 얼굴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도대체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는 푸념을 늘어놓는 개그맨이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술 기운을 빌어 불공평한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외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이다. 개그맨 박성광(29)은 요즘 KBS 개그콘서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란 코너로 경찰서에 들어온 온갖 취객들의 술주정을 실감나게 연기하며 '취객 연기의 달인'이란 닉네임이 붙었다.

  • ▲ 개그맨 박성광  ⓒ 뉴데일리
    ▲ 개그맨 박성광  ⓒ 뉴데일리

    "사실 원래부터 술에 취한 연기는 일가견이 있었죠. 우리 팀의 맏형 뻘인 광섭이 형도 그렇지만, 안나도 이게 연기인지 진짜 술에 취한 건지 모를 정도로 뛰어난 주사(酒邪)연기가 일품입니다. 한 마디로 '술꾼' 드림팀이 모였다고나 할까요? 하하"

    게다가 이들 세 명은 개그계에서도 소문난 주당들이다. 박성광은 폭탄주를 즐기고, 허안나는 소주 두 병은 '거뜬', 이광섭은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마실 정도로 술을 즐기는 편이다.

    "그렇다고 진짜 술꾼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박성광은 "술 마시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 코너에서 선보이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연기"라고 해명했다.

    "요즘 살기 힘들잖아요. 특히 아버지들의 어깨가 갈수록 무거워지는 것 같아 마음이 짠 할때가 있어요. 제가 펼치는 취객의 롤모델은 사실 아버지에요. 술만 취하시면 했던 얘기를 계속 반복하시고 가끔은 안좋았던 일들을 토로하시기도 해요. 저희들 연기가 기본적으로 웃음을 전해드리는 게 맞지만, 그냥 웃고 넘기는 게 아니라 이렇듯 실생활 속에서 느끼고 공감하는 부분들을 꺼내어 한번쯤 여러분들과 같이 공감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는 게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을 기획한 의도에요."

    실제로 이 코너에 등장하는 대사들은 그저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엔 무시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 보인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아이돌만 대우받는 더러운 세상" 등 듣다 보면 유머라기 보단 한이 섞인 넋두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다루는 '세태풍자'가 어둡다거나 진중함만 있는 건 아니다. 인정사정 없이 망가지는 이들의 연기를 보노라면 눈물이 쏙 바질 정도로 웃음을 터뜨리기 일쑤.

    나름의 철학과 웃음으로 무장한 '귀여운(?) 취객' 박성광을 20일 KBS '개그콘서트' 녹화장 앞에서 만났다.

    - 오늘이 개그콘서트 녹화날인가요?

    ▲네, 오후 1시부터 시작해서 끝나면 한 10시 정도 될 겁니다.

    - 굉장히 길군요. 중간에 밥은 먹습니까?

    ▲당연하죠(웃음).

  • ▲ 개그맨 박성광  ⓒ 뉴데일리

    - 일단 술 얘기가 빠질 수가 없죠. 리얼한 취객 연기로 요즘 잘 나가시는 것 같은데요?

    ▲얼마 전 KBS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도 제 대사가 나왔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된다"는 대사가 실제 드라마에 등장해 저도 놀랐습니다.

    - 그만큼 인기와 함께 해당 코너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얘기겠죠. 술 취해 난동을 부리는 취객 연기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처음에 누가 냈나요?

    ▲제가 했습니다. 그것을 작가와 감독님이 다듬어 주셨죠. 사실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술 취한 모습을 연기할 때 저희 아버지 흉내를 내기도 했지만, 최민석 선배님의 연기를 유심히 살펴본 게 저에겐 큰 도움이 됐고 실제로 모티브가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 친구를 통해 저를 보고 싶다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최 선배님이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가 기뻤죠. 만나 뵈면 올드보이 영화 보고 제가 취객 연기를 한 것이라는 말을 꼭 좀 드리고 싶네요.

    - 말씀을 들어보면 연기에 목 말라하는 연기자처럼 보이는데요. 전공이 뭔가요?

    ▲방송기술이요. 엔지니어 쪽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원래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희극이라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정통 연기도 하고 싶어요.

    ※박성광과 대화를 나누던 중, '아이디어 뱅크'라 불리는 이광섭이 불쑥 끼어들었다. 바늘 가는데 실도 따라가는 법이니…

    ▲(이광섭)셋 다 같은 학교입니다. 동아방송예술대학을 나왔는데, 전 방송보도를 전공했고 성광이는 방송기술, 안나는 연극영화과를 나왔죠. 학번은 제가 99학번으로 제일 선배입니다. 개그계에 저희 학교 출신이 꽤 있어요. 유세윤, 장동민, 윤성호, 김경아, 박영진 등. 그런데 다들 이상하게도 연기를 전공한 분들은 드물어요. 하지만 방송 특성화 학교라 그런지 틀이 없어요. 그래서 연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다 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주위에서 아이디어 뱅크라고 하는데…

    ▲(이광섭)이번 코너도 성광이하고 계속 의견을 나누긴 했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개그맨이라면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 사물에 대한 관찰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어요. 아이디어라는 게 혼자 가만히 앉아 있다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평소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자꾸 돌아다니면서 관찰을 해야 좋은 생각이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죠.

    -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 오랫동안 기획된 코너라고 들었습니다.

    ▲어느 기사에 4개월 동안 준비했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 정돈 아니구요. 단지 예전부터 술을 좋아하는 광섭이 형과 함게 취객을 소재로한 콩트를 해보자는 말을 자주 했어요. 아닌가 싶다가도 한번 해보자고 밀어붙인 건데 사실 감독님께 검사 받기 전까지 할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엔 별다른 내용이 없었거든요. 그저 술 먹는 개인기 뿐이었습니다. 재미있긴 한 데 알맹이가 없다고 혼날 줄 알았죠. 그런데 감독님이 그 속에서  "1등만 기억하는…"을 끄집어내신거죠. 감독님은 진짜 천재에요. 개그계의 제임스 카메룬이란 별명도 있다니까요.

  • ▲ 개그맨 박성광  ⓒ 뉴데일리

    ※어느새 또 한명의 주당 허안나가 자연스레 합류했다. 그리곤 "우리 감독님은 진짜 천재가 맞다"고 맞짱구를 친다.

    ▲(박성광·허안나)지난해 연예대상에서 코미디부분작가상을 받으신 분도 그렇게 얘기했구요. 외모도 작은거인이고 뒤에선 후광이 비칩니다. 그런데 빛난다는 얘기는 쓰지 말아주세요.

    - 주사가 생겼다고 하는데…

    ▲원래 없었는데 요즘 들어 생겼어요.

    - 진정한 매소드 연기군요.

    ▲예, 김명민씨가 살을 빼면서 루게릭 병을 실감나게 연기했다면 난 취객이니까 일단 많이 먹어보고…

    - 그런데 부작용이 생긴 거 군요.

    ▲네. 지금은 개선을 하고 싶습니다. 감독님도 그러시더라구요. "점점 방송이 점점 취해간다. 연기가 너무 진짜같다. 절제를 해라. 귀엽게 취해라" 너무 취하면 사람도 꼴보기 싫잖아요. 역시 제임스 카메룬 감독님 답죠?

    - 술 버릇이 뭔가요?

    ▲빨리 먹고 취하는데 문제는 잠을 안자고 전화를 건다는 점이죠.

    - 원래 술먹고 전화할 땐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지 않나요?

    ▲얼마 전에도 절친한 연예인 동료에게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다음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자기에게 마구 화를 냈다고 하더라구요. 기억이 전혀 없는데…아무튼 그날 이후로 자제하려고 합니다. 핸드폰을 꺼놓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전화를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영진('박대박'의 콤비)이 하고 한시간을 통화했어요(웃음).

    ▲(이광섭)저도 비슷한데요. 술 먹으면 갑자기 꽂히는 사람이 있어요. 선배라든가, 내가 평소 소홀히 했던 사람들요. 그러면 그순간 바로 전화를 걸죠. 또 술에 조금 취하면 자꾸만 누구를 가르치려는 버릇이 있어요. 형이고 뭐고,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라든지…바른 말을 막 하죠. 그래도 누구처럼 다음날 일어나서 후회할 짓은 안합니다.

    ▲(허안나)여자들하고 술 먹으면 주로 마지막까지 남는 편이에요. 그러고보니 얼마 전 홍대에서 담을 탄 게 생각나는군요.

  • ▲ KBS '개그콘서트 - 나를 술푸게 하는 사람들'이란 코너에서 취객들이 경찰서에서 벌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풍자적으로 표현하며 주목 받고 있는 개그맨 박성광, 이광섭, 허안나(좌측부터). 사진은 개그콘서트 방송 장면. 
    ▲ KBS '개그콘서트 - 나를 술푸게 하는 사람들'이란 코너에서 취객들이 경찰서에서 벌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풍자적으로 표현하며 주목 받고 있는 개그맨 박성광, 이광섭, 허안나(좌측부터). 사진은 개그콘서트 방송 장면. 

    - 홍대 담장을?

    ▲(허안나)아니, 집과 집사이의 담을 탔어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나중에 여자 선배가 동영상을 찍어서 알았죠. 그래서 재빨리 삭제를 했습니다. 눈 앞에서…

    -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제일 힘드나요?

    ▲모든 개그맨들이 그렇겠지만 일단 아이디어를 매주 짜내는 게 힘들죠.

    - 개그맨이 된 것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은 없나요?

    ▲에이, 얼마나 했다구요. 즐기고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할 나이잖아요.

    - 매소드 연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만약 정통 연기를 한다면 롤모델이 있나요?

    ▲선배님 중 연기를 하시는 분이 많은 데 연기와 개그를 다르게 보는 시각은 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개그도 연기의 일환이죠. 그래서 희극인이라고 부르잖아요. 따라서 겸업이라기 보다는 언젠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맡고 싶은 캐릭터는 영화 '색즉시공'에서 임창정 선배님이 맡았던 역할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차태현 선배님도 좋구요.

    ▲(허안나)전 사극이요. 선덕여왕 같은 정통사극…특히 미실이 같은 역할을 맡고 싶어요(잠시 정적이 흐른다…).

    -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라디오 DJ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는데 현재 욕심이 나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특별히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없지만 '컬투쇼' 같은 느낌의 개그쇼을 하고 싶습니다. 아니, 뺐고 싶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름은 '박대박 쇼'가 좋겠네요. 만약 박영진씨가 거절한다면…영진이는 빼버리고 '박쇼'로 하죠…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