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초 용인 에버랜드에서 외국 손님들을 만나기로 하여 갔었습니다. 거긴 80년대 중반에 우리 유치원 아이들 소풍에 따라 갔던 적이 있고 그 후로 처음 갔더니 완전히 바뀐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손님들보다 좀 일찍 가서 기다리려고 서둘러 갔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좀 있어서 걸으면서 만추의 풍경을 음미하게 됐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여유를 누리지 못해서 인지 아니면 다음 스케줄 때문이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빨리 만나고 빨리 갈 생각만 있어서 좋은 풍경을 충분히 느끼지는 못하는 내가 좀 한심스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귀가 번쩍한 것은 성탄 찬송이 은은하게 전 유원지를 덮는 것이었습니다. 음악이 그렇게 멋있게 들리는지 참으로 매혹적이었습니다. 거기가 무슨 교회 유원지도 아닌데 착각을 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신나는 캐럴도 나오고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도 나와서 춤추고 외국 손님들과 기념촬영 연신 해대고 계절은 이미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교회는 성탄을 조용하게 보내는 반면 밖은 요란함을 느낍니다. 성탄절 문화가 원래는 교회의 문화였는데 이제는 세속문화의 느낌이 더 큰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니라 ‘소란한 밤 죄악의 밤’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 탄생한 날짜가 기록되지 아니한 뜻도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크리스천이든 넌크리스천이든 이 날 기분 낸다고 난린데 그 날짜가 정확히 기록되었다면 진짜 우상의 날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어쨌든 성탄절 분위기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고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조용하고 뜻 깊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용인에 갔을 때는 진짜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미리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며칠 사이 진짜 12월 메리 크리스마스로 접어들었습니다.

    인터넷 뉴스에 보니까 최근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각계 인사들에게 보낸 연하장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나도 그걸 받았는데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감사히 받았습니다. 전 정부 때도 받았었는지 잘 기억은 없지만 어쨌든 이 소시민에게도 높으신 분이 보내주신 연하장이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물론 비서실에서 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좀 때 이르게 배달이 됐다는 데서 해석이 분분하더군요, 난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지 않겠나 하고 더 이상 생각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들리는 말에는 이 대통령이 워낙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 조기집행과 속도전 등을 강조하다 보니 같은 맥락에서 연하장도 빨리 보낸 것 같다는 말과 예년에는 대통령 연하장이 다른 연하장들과 섞여서 배달되는 바람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서 발송 시기를 앞당긴 것이라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무슨 상관인가요. 그냥 받아서 기분 좋으면 됐죠 뭐. 그 마음 이해하는 것은 동변상련입니다. 나도 가끔 세월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세월이 가면 다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루가 가고 또 한 해가 가고 그러면서 늙어가는 데도 가는 세월을 더 재촉해야 하는 분들의 마음이 나는 이해가 된답니다.

    정말 세월은 유수와 같습니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니 나도 많이 늙었습니다. 나는 당당하게 내 나이를 얘기하고 다녔는데 이젠 웬지 국가기밀에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입니다. 가는 세월 누가 막겠습니까.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는 것이 우주의 원리요 하나님의 섭리일진대 사는 날 동안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 나와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꼭 요긴한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오늘도 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