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며칠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지난달 30일, 냉면집 지하 강당에서 이젠 낯익은 노래들이 울려퍼졌다.
    전남 광주시 동명동의 북한 음식 전문점 ‘백두산 식당’이다.
    관객들은 인근 주민들이 대부분. 때론 멀리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노래며 물동이 춤을 선보인 이들은 백두산민족예술단 단원들. 12명 모두 탈북자들로 이뤄진 탈북인 예술단이다.
    단장은 ‘백두산 식당’을 운영하는 주미영씨. 주씨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지난 2000년도 12월 27일 탈북, 2005년 3월 19일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단원 대부분은 북한의 협주단이나 가극단-예술단에서 활동하거나 성악, 악기, 무용 등을 전공한 실력파들이다.
    “함흥냉면만 만들어 팔다가 음식만 아니라 북한 문화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예술단을 창단하게 됐습니다.”
    아름아름 안면이 있는 단원들을 어렵사리 모았다. 사회안전성 협주단(경찰협주단)에서 성악배우를 지낸 최준휘씨가 부단장으로 들어왔고 피바다 가극단 무용배우로 북한의 유명 여배우의 친언니인 김선영씨가 감독을 맡게 됐다. 만수대 예술단에서 성악배우로 활동한 이유진·신지현씨며 무용배우 김진숙, 정영애·김은혜·김지운·최정희씨 등이 단원으로 한마음이 됐다.
    북한에서는 내로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지만 무대는 비좁은 식당 지하 강당. 하지만 이들의 열성은 세종문화회관 무대만큼이나 크다.

  • ▲ 백두산예술단의 공연 모습. ⓒ 아시아문화교류재단 제공 
    ▲ 백두산예술단의 공연 모습. ⓒ 아시아문화교류재단 제공 

    “다양한 단원들의 장기를 모아 남한 동포들에게 북한의 문화도 알리고 싶습니다. 또 남북의 문화 차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고요.”
    주 단장은 “돈벌이가 아니라 남과 북이 이해의 폭을 줄이기 위한 예술활동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만만치 않은 예술단 운영 경비는 전남 보성군 대원사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대원사 측은 11월 말 서울 조계사 주관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을 만큼 적극 성원하고 있다.
    조계사 공연 외에도 11일엔 광주에서 열리는 영농 축제의 무대에도 선다.
     
    탈북자들의 예술단체는 현재 서울에만 7곳이 있다. 하지만 지방은 백두산예술단이 처음이다.
    주 단장은 자신의 고향 함경도가 ‘뭐든 하면 잘 해야 한다’는 고집이 강한데 전라도도 비슷한 것 같다며 “예향이라는 광주라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가장 큰 애로라면 바로 이들이 극복하고 싶어 하는 남북 문화의 차이.
    김일성, 김정일이나 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오다 사랑과 이별이 대부분인 남한의 문화에 맞추려니 관객들이 ‘신기하다’는 느낌은 갖겠지만 그만큼 공감의 폭이 적다는 것이 이들의 걱정이다.
    주 단장은 그래서 “물동이 춤 등 정치적 색채가 덜 들어간 안무 등을 보여드리려고 애를 쓴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 공연 레퍼토리는 한국에서 승인된 ‘반갑습니다’-‘휘파람’ 등의 북한 가요와 민족의 노래인 ‘진달래’ ‘도라지’ 등으로 구성된다. 북한에서 최고급 무용인 마술처럼 옷을 갈아입는 ‘마술춤’(사계절춤)은 이들의 ‘비장의 무기’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다 보니 의상 바느질도 온전히 단원 몫이다. 둘러앉아 옷을 손보다 고향생각이 나면 눈물바다가 되고, 그러다 한숨 한번 크게 쉬고 다시 연습장에 나서는 것이 이들의 일과이다.
    “북한 문화를 알리는 일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이들은 “출발은 광주였지만 전국을 무대로, 나아가 세계무대까지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