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당신이 곧 역사!’라고. 그러나 당신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만 뜻밖이라는 듯 자신이 곧 역사라는 사실을  믿으려하지를 않는다. 꼭 우리들뿐만이 아니라 수십억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역사의 개체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대단히 중요하다.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기록에 등재된 기사 중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노라면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알게 된다. 첫째는 양식이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자신에게는 불운이 되더라도 국가나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행동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둘째는 자신의 실익만을 챙기다가 공익을 해친 부류들의 참담한 결과를 들 수가 있겠다. 이들로 인해 역사는 침체되고, 결과적으로는 후대 자손들의 불행까지 자초한 꼴이 된다. 이 두 가지 특정한 경우에 대당되지 않으면 역사기록의 대상이 되지를 않았던 탓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곧 역사임을 잊고 살 뿐이다.

               역사를 기록한 사관(史官)들은 공정을 기한다는 일념으로 금욕적(禁慾的)인 방법을 최선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 기록을 연구하는 후대의 사사(史家)들 또한 문자로 밝혀진 이외의 것을 살펴서는 아니 된다는 금욕적인 연구방법을 최선으로 여겼기에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연구는 단순하고 단조로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은 기록된 문자에만 의존하여서는 픽션(虛構)을 구사할 수가 없다. 이 막막함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문자와 문자 사이의 빈칸인 행간(行間)을 읽어낼 수밖에 없다. 행간을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역사학자들과 같은 <금욕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그 금욕적인 방법을 뛰어 넘지 아니하고는 행간을 읽어낼 수가 없다.

                 가령, 위대한 세종시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앞 시대인 태종(이방원)시대를 정확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태종은 영광된 다음 시대(세종시대)를 열어가지 위해 네 사람의 친 처남에게 사약을 내려서 죽게 하였고, 자신에게는 사돈이자 세종에게는 장인이 되는 심온(沈溫)까지 자진하게 하였으며, 자신과 절친했던 어렸을 때의 친구 이숙번까지 귀양을 보내고 나서야 아들 세종에게 양위하고 자신은 상왕의 자리로 물러난다. 이때  태종의 춘추 50세, 아무리 후대를 위한 자기희생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기막힌 용단이 아닐 수 없다.
              이 용단에 대한 나의 행간읽기는 단순 명료하다.

                “천하의 모든 악명(惡名)은 이 아비가 짊어지고 갈 것이니, 주상은 만세에 성군(聖君)의 이름을 남기도록 하라!”

                당시대 모든 사료를 읽어도 태종이 이같이 말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태종시대의 행간을 살펴보면 쉽사리 알아낼 수 있는 태종의 심회라고 나는 확신한다. 따라서 위대한 세종시대는 태종에 의해 기초가 닦아 졌음은 역사를 행간으로 읽어야 알 수가 있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살아있는 역사의 행간 속에 잠겨 있을 뿐,  언제든지 역사의 표면(기록)으로 튀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