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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실세로 알려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문화일보 논설위원 윤창중 씨를 그의 칼럼 “이재오의 환상”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했다는 이유로 형사고소를 한 바 있다. 제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원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공인에 대한 언론의 평가, 다시 말해 언론의 자유는 “피고인이 자신의 칼럼의 일부 부분에 대한 책임으로서 일정금액을 배상할 책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판시(判示)의 요점이었다.
나는 이재오 씨와도 공적으로(사적인 관계는 없다) 조우(遭遇) 하면 웃으며 악수하는 사이이고 윤창중 논설위원과도 가까운 언론 선후배 관계다. 윤 위원과는 가끔 만나 밥도 함께 먹는다. 그러나 이 건(件)에 관한한 나는 이재오 씨가 심심한 반론을 표할 수는 있을지언정 형사고소까지 한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그런 식이라면 언론인이라는 직업이 아예 씨가 마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25년여의 신문 칼럼 집필을 통해 단 한 번의 ‘이긴 사례’(류시민 원고 기각)를 제외하고는 그런 고소를 당한 적이 없다. 내 칼럼도 무척 때리고 찌르고 기분 나쁘게 만들고, 부아를 지르고 빈정거리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건 내가 그래도 최소한 법에 정통으로 걸리지는 않으려고 비상한 신경을 쓴 까닭도 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나의 말 총(銃)을 맞은 분들이 비록 화는 머리끝까지 났어도 그것을 굳이 형사고발로 가져가지는 않기로 한 결정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기자의 밥(?)이 될 용의가 있어야 한다. 한 껏 위악적으로, 과장되게 말해서 말이다. 기분 나쁘더라도 100% 황당무계하고 100% 거짓 '소설'이 아닌 한에는 정치인은 기자의 신랄한 공적(公的) 비판기사에 대해 “그건 너의 직업이니까..." 하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자라는 직종이 존재할 수가 없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다. 평생 보수 정치인으로 일관한 어떤 저명한 정치인 한 분이 하루 아침에 김대중 정부의 총리직을 수락하고 취임했다. 나로서는 황당했다. 5공 초기부터 그렇게도 ‘꼴통보수’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김대중 꼬붕이라니...그래서 사정없이 비틀고 꼬집고 쑤시고 패고 이죽거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청와대에 초치돼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식사 전 칵테일을 서서 마시며 담소하고 있었다. 갑자기 목뒤에 뜨거운 사람 입 기운을 느꼈다. 홱 돌아보니. 이게 웬 웬수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기? 바로 며칠 전 작살 낸 바로 그 총리가 빙그레 웃으며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분은 정중히 인사하며 “잘 읽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그 분은 정치를 아는 분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기자란 무엇인가를 아는 분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나오는데야 아무리 모진 기자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그 분은 그 분야에 관한한 챔피언 중 챔피언이고 나는 탈락자 중 탈락자인 폭탄주로 풀밖에.
이재오 위원장, 귀하는 아주 세련된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은 좀 있는 분으로 알아 왔습니다. 그래서 귀하가 윤창중 논객을 형사고발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언론 쟁이들은 부처님이 짓지 말라고 하신 구업(口業)을 지을 수밖에 없는 기구한 팔자로 내몰린 사람들입니다.
귀하가 더 크시려면 언론 쟁이들의 그런 천형(天刑)의 구업 짓기를 여유 있게 웃으며 눙쳐 버릴 줄 아는 ‘통’을 더 키우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