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敗亡 하루 전인 1975년 4월29일 월남 사이공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선 철수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美軍 헬리콥터가 미국인, 한국인, 월남인들을 태워 항공모함으로 날랐다. 마당에서 한국인들이 탑승을 대기하고 있었다. 李大鎔 공사가 이들을 통제하였다. 헬기의 활동이 너무 늦어 이러다가는 한국인들이 타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 李 공사는 미군 통제관에게 부탁하여 동맹국인 한국인들을 먼저 태워줄 것을 요청하였다. 통제관은 우선권을 주겠다고 하면서 "조용히 기다려야지 절대로 뛰어선 안된다"고 신신 당부하였다.
     
     李 공사도 한국 민간인들에게 이를 단단히 부탁하였다.
     
     <한국인 100여 명이 줄 지어 나갈 때까지는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었다. 한국인 4열 종대의 선두는 개찰구 약8 미터 지점에 도달하였으며 계속 전진하고 있어서 헬리콥터 탑승은 눈앞에 다가 왔다. 이때 한국인 집결 대기 장소에 남아 있는 인원은 약70명이었다. 이들이 조용히 일어서서 줄을 형성하면서 뒤에 따른다면 한국인과 월남부인 및 자녀들 全員은 안전하게 헬리콥터를 타고, 美 7함대로 후송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적 시기에 사고가 발생하였다. 한국 민간인들 일부가 보따리를 들고 일어서더니 뛰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앉아 있던 한국인 약60명이 일제히 일어서서 뛰어나왔다. 미국 통제관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우선순위를 주기 위하여) 4열종대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뛰어나왔다. 줄은 삽시간에 모두 없어지고 일대 수라장이 되었다. 미 해병들은 헬리콥터 탑승을 중단시켰다>(李大鎔, '사이공 억류기'에서)
     
     이렇게 하여 李 공사 등 세 명의 외교관이 5년간 공산월남에 억류되어 옥살이를 하였고 수십 명의 한국인들도 出國하지 못하였다.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밤늦게 소음으로 이웃의 잠을 방해하고, 술을 마시고 소란 피우고,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고, 거리에서 소변 보는 사람. 이런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지 않아 작년에 경범죄로 처벌된 숫자가 일본의 44.4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드러나는 한국인의 無禮는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가 있다. 북한군이 기습하여 서울을 포위하였을 때, 決死抗戰이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인들이 사이공에서처럼 무질서해지면 나라가 망하는 수가 있다. 무례한 사람들은 법도 지키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들이 많으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국회에서 명패를 던진 의원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