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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근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친분이 있는 의원들간 그룹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시간이 날 때 마다 이동하며 대화를 공유했다. 마치 그룹토의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4일 충남 천안 재능연수원에서 열린 의원연찬회에서다. 이날 연찬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9·3개각이 가장 큰 화제였고 단연 '정운찬 총리 내정자 발탁'이 최대 관심사였다. "이 대통령이 작품하나를 만들었다"(원희룡 의원), "역대 개각 중 가장 잘됐다"(홍준표 전 원내대표)란 평이 나올만큼 '정운찬 총리'카드가 여권에 플러스가 될 것이란 데 큰 이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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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에 잠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연합뉴스
그러나 정 총리 내정자가 차기 대권주자였고, 인지도가 높으며 대중적 이미지도 좋다는 점은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들에겐 달갑지만은 않다. 특히 경쟁후보군을 크게 앞서며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로선 더욱 그러하다. 유리한 현 구도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 부터 그에겐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고 계획했던 기존의 대권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고민을 떠안은 셈이다.
이 대통령의 특사로 유럽을 순방중인 박 전 대표는 3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행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지만 정 전 총리 내정작 발탁에 대해선 침묵했다. 반면 측근 의원들은 이 문제로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독주체제 보다 경쟁자가 생기면 오히려 더 좋은 게 아니냐"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는 의원들이 많았지만 정 총리 내정자에 대한 여론의 평이 좋아질 경우 그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수도 있어 장밋빛 그림만 그리기는 힘들다.
아직 정 총리 내정자의 정치력이 미흡하고, 검증이 안 된 만큼 지레 겁먹고 우려할 건 없다는 반응이 대체적이고 무엇보다 그가 당내 세력이 없다는 점 때문에 일부 의원은 그가 '박근혜 대항마'가 될 것이란 전망에 "택도 없는 소리"라고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중립성향의 한 중진 의원은 "당내 세력이란 건 여론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만약 여론이 정운찬에게 쏠리면 의원들 역시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표도 처음부터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게 아니라 여론이 그에게 있으니 의원들도 그쪽에 쏠려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정 총리 내정자 하기에 따라 차기 대권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이 의원은 기존의 정치권이 여론에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정 총리 내정자를 더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봤다. 겉으론 "무난하다"지만 삼삼오오 모여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친박계의 현주소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솔직히 신경쓰인다"고 털어놨다. 이 의원도 첫 질문에선 "건전한 경쟁관계는 플러스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정 총리 내정자가 총리로서 직무수행을 무난히 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들며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들은 '킹메이커'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친이계가 정 총리 내정자를 새로운 대권주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했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친박계 한 관계자는 "정 총리 내정자를 잘 모르고 어찌될 지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불안하게 만든다"고 했다. 한 재선 의원은 "정 총리 내정자가 (박근혜 대항마가) 안 되도록 우리가 만들어야지"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와 그의 측근 의원들에게 새로운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