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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할아버지가 살아서 남북이 분단된 것 보면 마음이 아프실 것 같다"
외교 자문관으로 고종 황제를 보좌하고 대한 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섰던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 서거 60주기를 맞아 5일 서울 마포 양화진 외국인 묘지 내 선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는 헐버트 박사 손자 브루스 헐버트(70)씨 부부가 초청돼 눈길을 끌었다. 김영일 광복회장, 이병구 서울지방보훈청장, 신영섭 마포구청장,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등이 참여해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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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헐버트 박사의 초상화. ⓒ 뉴데일리
추모식이 거행된 기념관에는 헐버트 박사를 기리려고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서울경찰악대는 헐버트 박사가 평소에 좋아했던 아리랑을 연주했고 기념사업회는 그를 기리는 추모영상을 준비했다. 추모영상은 헐버트 박사 일대기를 요약한 것으로 이를 보던 참석자 중 일부는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추모식 참석차 방한한 브루스씨는 인사말에서 "한국인들이 할아버지에 많은 감사를 표해 영광스럽다"며 "이렇게 한국인을 만나보니 할아버지 마음 속에 한국이 자리 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지금 살아서 분단된 한국을 보신다면 마음이 아파 또 다시 한국 통일을 위해 노력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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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버트 박사 서거 6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헐버트 박사의 손자 브루스씨 내외 ⓒ 뉴데일리
브루스씨는 "할아버지는 항상 교육을 통해서 한국을 정복했던 나라를 이길 수 있고 또 동등하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지금 한국은 경제와 문화가 눈부시게 발전해 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나는 할아버지가 한국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거라 믿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토록 놀랍게 발전한 한국을 보면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실까"라고 덧붙였다.
김영일 회장은 추모사에서 "헐버트 박사는 광복 소식을 듣고 '정의와 인도의 승리'라며 '한국 독립은 내 조국이 독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면서 무척 기뻐했다"며 "우리 모두 한국문화에 대한 박사의 뜨거운 애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진 회장은 "우리는 헐버트 박사가 우리에게 심어준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하고 교육입국 정신을 되새겨 우리 모두의 염원인 민족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브루스씨는 헐버트 박사가 쓴 한국 최초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 헐버트 박사가 평소에 썼던 조선말기의 은촛대, 서거 후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받은 건국훈장, 가족사진 등을 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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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버트 박사의 손자 브루스씨가 기증한 헐버트 박사의 유품. 사민필지, 건국훈장, 은촛대, 가족사진. 사진은 브루스씨의 아버지인 둘째 아들과 헐버트 박사 내외. ⓒ 뉴데일리
헐버트 박사는 미국 버몬트주 출생으로 1886년 23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내한해 교육분야 총책임자 및 외교 자문관으로 고종황제를 보좌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고종황제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해 을사늑약 무효와 한국 자주독립을 주장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06년 '한국평론'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을 폭로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열사 등이 고종황제의 밀사로 참석하는 데 적극 지원했다.
그해 헐버트 박사는 일제 박해로 추방돼 미국에 돌아간 후 40여 년 만인 1949년 7월 29일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그러나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86세를 일기로 서거했고 평소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
한국 정부는 1950년 종교, 교육, 언론, 문화 등의 개화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 헐버트 박사의 공로를 인정해 외국인으로 처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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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포 양화진 외국인 묘지 내에 있는 고 헐버트 박사의 묘 ⓒ 뉴데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