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 뉴데일리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 뉴데일리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다가오는 8.15 특별사면 대상에는 서민들의 생계형 범죄만을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KBS1 라디오, 교통방송(TBS.TBN),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 제20차 라디오.인터넷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에서 이같이 밝혔다. 20회 특집으로 KBS 민경욱 앵커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라디오 프로에서 이 대통령은 “기업인들 또는 공직자들 등 여러 계층에서 사면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8.15 사면은 오로지 생계형 사면, 농민, 어민 또는 서민, 자영업 하는 분들, 또 특히 생계형 운전을 하다가 운전면허가 중지된 분들을 찾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한 150만 명 정도 되는 그런 분들은 예외 없이 100% 다 면제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이분이 서민을 특권계급처럼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서민은 사면하고 기업인은 사면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과연 법치국가에서 성립하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계급적 특권을 부인한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특권을 누려서도 안 되지만 재산이 적다고 해서 특권을 누려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고 못박았다. 
     
    서민이란 누구인가? 과연 객관적 기준이 있는가? 농민, 어민, 자영업을 하면 무조건 서민인가? 재산이 100억 원을 넘는 어민이나 자영업자도 서민인가? 그런 사람들을 배제한다면 재산의 크기를 기준으로 사면 여부를 결정하니 헌법정신 위반이다.
     
    언론이 편의상 서민이라고 호칭할 순 있지만 이 애매한 단어를 기준으로 대통령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재산의 다소(多少)를 기준으로 하여 대통령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위반이고 권력남용에 해당한다. 법을 선심용으로 쓴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계형 운전을 하다가 운전면허가 취소된 사람들을 친절하게 찾아내어 사면해주겠다는 말도 이해할 수 없다. ‘생계형 운전’이란 무슨 뜻인가? 직장에 가려고 운전하는 것은 생계형이고, 휴가를 가는 것은 비생계형 운전이란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문병을 가는 길에 사고를 낸 운전자는 생계형인가 아닌가? 서민 여부에다가 운전의 목적을 따져서 사면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이상한데, 행정기술상 과연 이런 분류가 가능할까? 
     
    이렇게 대통령이 불법 서민들을 봐주면 준법생활하는 서민들은 뭐가 되는가? 준법생활자들이 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제발 법대로 하여 세상을 좀 조용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엉뚱한 데 신경을 쓰지 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법을 위반한 서민들에 대해선 자상하게 신경을 쓰는데 준법서민들에 대하여는 무심하다. 그 증거가 쌍용자동차 사태이다. 다수 쌍용자동차 직원들(상당수가 서민일 것이다)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데 폭도화된 노조원들이 화염병, 사제대포, 쇠파이프, 죽창까지 쌓아놓고 직장을 폐쇄하고 경찰에 저항한다. 경찰이 장비가 없어서 진압을 못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평소 좌경폭도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경찰관이 다치거나 죽는 것보다 더 염려한다는 것을 알기에 폭도들에게 매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행위자들을 엄단하여 성실하게 생계를 꾸려가는 서민들을 보호하는 게 진정으로 서민을 돕는 일이다. 블법서민을 사면시키는 것은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법의지를 북돋우어 줄 것이고, 이는 준법서민들을 괴롭게 만들 것이다. 즉 불법서민 사면은 준법서민 괴롭히기이다. 
     
    불법서민 사면 조치가 소위 중도실용 노선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중도실용은 '헌법정신대로 하지 않겠다' '법을 서민용, 선심용으로 쓰겠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중도도 아니고 실용도 아니고 반(反)법치이다. 법치책임자가 불법과 준법 사이에서 중도를 추구한다면 경찰은 폭도와 양민 사이에서 중립하게 된다. 지금 쌍용차 사태에서 그런 현상을 본다. 이명박식 중도실용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성숙시켜야 할 단계에서 오히려 철부지 수준으로 격하시킬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