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 뉴데일리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 뉴데일리

    참전 16개국 정상회담을 휴전선에서! 
      
    오늘은 1953년7월27일 휴전이 된 지 56년이 되는 날이다. 내년 6월25일은 민족반역의 김일성 남침 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위하여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다. 6.25 전쟁은 지금도 계속중이다. 휴전중일 뿐이다. 축구를 하다가 하프 타임을 맞아 쉬고 있다. 오늘밤 김정일이 "인민군 일제 돌격!"이란 명령을 내리면 6.25전쟁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6.25 전쟁은 자유통일하여 전범 집단인 김정일 정권을 단죄할 때 끝난다. 
      
    내년 60주년 행사는 세계적 행사로 만들어야 한다. 참전 16개국 정상들을 초청하여, 그들이 자국 젊은이들을 희생시켜서 지켜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발전한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자유통일의 불가피성을 세계 앞에서 천명하면 어떨까?
      
    내년 60주년 행사를 계기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의 의미와 전쟁세대의 노고를 알리고, 북한주민들에겐 6.25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란 사실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가진 한국과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김정일 정권으로 돌려놓을 필요도 있다.
      
    학교마다, 마을마다 그 학교와 마을출신 전사자 기념비를 만들자. 경험자들이 6.25 수기를 쓰게 하여 국가기록원에 보존하도록 하자.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6.25 전쟁중 및 전후 납북자들과 국군포로들을 반드시 구출하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국제여론을 일으키자. 무엇보다도 유엔안보리가 김정일을 전쟁범죄, 반인륜범죄, 대학살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하도록 하는 운동을 전개하자!
      
    6.25 전쟁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대사건이었다. 

    1. 미국은 6.25 전쟁을 계기로 대소 냉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군비를 세 배 증액시킨다. 2. 서독의 재무장을 허용한다. 3. 일본과 서독이 경제부흥을 하여 서방세계 편에 서서 공산세계와 대결한다. 4.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만들어져 북한군의 재남침을 저지하고, 그 뒤 한국이 군사비를 최소한도로 지출하면서 경제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다. 5. 민간인 박정희가 다시 군복을 입도록 하여 그 11년 뒤 5.16 혁명으로 근대화의 기수가 될 수 있게 만든 것도 6.25 전쟁이었다. 6. 남한에 강력한 반공자유민주 정부가 들어서게 하였다. 7. 한국인들로 하여금 공산주의는 악마적 이념임을 체감하게 하여 좌익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8. 이 전쟁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중공을 국제사회가 침략자로 낙인찍고 고립시켰다. 9. 동서냉전에서 서방의 승리는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셈이다. 10. 냉전은 한국이 전범집단인 북한정권을 해체하고 자유통일하였을 때 최종적으로 끝난다. 우리는 지금 진실, 정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 
      
    김일성의 남침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1960년대 이전에 월남처럼 적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간접침략에 대하여는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족을 치기 위하여 스탈린과 모택동의 도움을 받아 일요일 새벽에 비겁한 기습을 한 김일성은 결국 자신의 무덤 뿐 아니라 국제공산주의의 무덤을 판 것이다. 
      
    이 전쟁에서 김일성은 한반도를 국제전쟁터로 만들어 300만의 고귀한 생명을 죽게 만들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은 개혁 개방을 거부함으로써 300만의 동족을 사실상 굶겨죽였다. 또 다른 100만 명은 강제수용소에서 사라졌다. 약700만 명의 인명 손실에 책임 있는 김정일을 단죄하기 위하여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법리와 사실은 충분하다. 모자라는 것은 우리의 용기이다. 
      
    서울에 있는 용산 전쟁 기념관의 핵심은 회랑에 새겨진 전사자의 이름들일 것이다. 이런 통계표가 붙어 있다. 
      
    *한국군 전사자
      
      6.25 전 창군기: 8824명 /6.25 전쟁기: 152,279명 /월남전: 4770명 /휴전 이후: 4712명 / 합계: 170,585명
      
    이 표는 한국이 아직 김정일 정권과 전쟁중이란 현실을 잘 보여준다. 1953년7월27일 이후 국군 4712명이 침투하는 북한군과 전투를 벌여 죽었다.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미군만큼 많다. 한국은 휴전기에 다른 나라의 전쟁기보다 더 많이 싸운 셈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6.25남침 전쟁은 언제 종료되는가. 이 표가 말해주고 있다. 북한 정권이 무너질 때 한국전쟁은 한국과 자유진영의 최종승리로 끝난다. 6.25는 1950년 6월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소련의 꼭두각시인 김일성 정권이 등장하여 대남적화공작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6.25 전에 이미 북한군 및 남한내 좌익반역세력과 싸우면서 국군이 8824명의 전사자를 낸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6.25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6.25열전(熱戰). 그 무대인 한반도에서 냉전이 이미 끝났으니 대북경계태세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한때 집권세력이 되었다. 이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려 하는 6.15 선언은 남한적화를 기약한 반역선언이다. 소련과 미국이 대결한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남북한이 대결하는 6.25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7년 전에도 서해상에서 전투가 발생하여 한국군 수십명과 북한군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6.25 사변세력과 6.15사변세력은 한 통속이다. 
      
    핵무장한 김정일 정권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맺자고 나온다. 평화협정이란 말의 뒷장에는 주한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란 말이 쓰여 있다. 핵무장한 남침정권이 북한지역에 살아 있는데 평화협정을 백 번 맺은들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인가. 김정일 무장집단은 1995년부터 4년간 비무장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식량배급을 끊어버리는 '아사(餓死)전쟁'을 벌여 북한주민쪽에서 300만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김정일 정권이 지속되는 한반도의 평화는 공동묘지의 평화일 뿐이다. 
      
    우리는 평화협정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북한독재정권의 해체, 6.25 남침 사과 및 배상, 북한의 실질적 민주화, 핵무기 폐기, 생화학무기 폐기,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대한항공 폭파 및 아웅산테러범 처벌과 보상 등을 요구해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공존하고, 노예와 자유인이 붙어 사는 가운데서 맺는 평화협정은 전쟁이나 내전의 초대장이 될 뿐이다. 
      
    정부는 6.25 남침 60주년 행사를 제2의 서울올림픽처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세계적 행사로 만들어야 한다. 6.25가 세계적 사건이었으니. 서울올림픽으로 김일성의 기반을 허물었듯이 6.25남침 60주년을 기념하는 그 힘으로 김정일을 정치적으로 사망하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이다. 정부가 하지 않을 땐 국민들이 의병처럼 일어날 것이다. 

    휴전으로 망한 월남과 흥한 한국의 차이 -가장 큰 원인은 한국엔 이승만이 있었고 월남엔 없었다는 점이다. 
     
    1973년의 월남평화협정과 1953년의 한국 휴전협정은 다른 점이 많다. 

    1. 월남평화협정으로 주월미군은 철군했는데 월남에 있던 월맹군은 철군하지 않았다. 
    2. 한국에선 주한미군은 남았고, 중공군은 철군했다. 
    3. 월남에서 17도선은 군사분계선으로 지켜지지 않았으나 휴전선은 지켜졌다. 한미동맹이 완강했기 때문이다. 월남에선 17도선 관리를 베트콩과 월맹군이 장악했다.
    4. 휴전 이후 한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이 강화되었으나 월남에선 티우 정권이 약해졌다. 
    5. 월남에선 닉슨 대통령이 월남방어를 공약(空約)만 했으나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강제화했다.
    6. 협정 이후 미국은 월남에서 발을 뺐으나 미국은 한국을 더욱 깊게 지원하게 되었다. 
    이런 차이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한국엔 이승만이 있었고 월남엔 없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