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이하 미디어위)가 지난 6월 25일 최종 보고서 작성 및 제출을 하면서 활동을 마치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민주당 측 추천위원들이 여론조사 실시 여부로 빠져나가면서 사실 상 반쪽 보고서가 되고 말았다. 미디어위에 참여한 위원으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미디어위가 사실 상 파행으로 끝나게 된 이유는 애초에 태생적 한계, 정당 정치의 구조의 문제, 그리고 각 당의 추천위원들의 노력 부족 등 때문이다. 미디어위는 이미 정부와 여당이 입법안을 사실 상 완성해놓은 상태에서, 국회 파행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 급조된 조직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자문기구냐 사회적 합의기구냐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문기구이려면 정부와 여당이 입법안을 만들기 전에 구성해야 했다. 그러면 각종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이를 국회에서 참고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법안이 완성된 상황에서 구성되다보니, 논의의 폭이 극히 좁을 수밖에 없었다. 미디어위 활동 내내 사실 상 법안 조항 하나하나에 대한 찬반토론으로 흐르게 된 근본 이유이다.

    민주당 측 위원들 역시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사회적 합의 기구라 주장하게 된 것이고, 합의를 위해서 여론조사를 실시하자는 주장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바로 이 여론조사와 사회적 합의 문제가 끝까지 풀리지 않아 파행이 되었으니, 미디어위 태생의 근본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각 정당과 위원들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찬반 형태의 여론조사 문제는 결코 합의될 수 없었더라도,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냐는 것이다.

    먼저 정당의 문제이다. 미디어위 위원들은 각 정당이 추천했기 때문에 각 정당에서 자신들의 노선이나 방향과 맞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그러니 주로 민주당 측 위원들이 주장한 대로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한나라당의 눈치를 봐서 소신 발언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여론조사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처음부터 한나라당 측 위원이 될 수가 없었다. 반대로 민주당 측 역시 여론조사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민주당 측 추천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은 미디어위가 최소한 세금이나 축내지는 않았다는 정도의 국민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한나라당 측의 전체적인 방향은 100일 간 시간이나 떼우다 문방위로 넘기면 된다는 식이었고, 민주당 측은 정세균 대표 등이 미디어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디어위를 무력화시키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전병헌 민주당 측 간사는 계속해서 민주당 측 위원들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열면서 여론투쟁에만 골몰했다. 전체적으로 야당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미디어위의 개입정도는 민주당 측, 그리고 민주당과 함께 움직인 언론노조가 훨씬 심했다.

    미디어위에 참여한 위원들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반성할 것이 많다. 큰 틀에서 한나라당 측과 방향이 맞아야 선임되었다 하더라도, 작은 부분들은 빨리빨리 합의하면서 논의를 진전시켜나가야 했다. 한나라당 측 위원들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더라도 논의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민주당 측 위원들도 잘한 부분이 별로 없다. 필자가 한나라당 측 추천위원이라 설득력은 떨어지겠지만, 공개 회의 때 발언했듯이, 이번에 민주당 측 위원들에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찬반형태의 여론조사를 관철시기 위해서라도 민주당 측 위원들은 더 적극적으로 법안 논의에 나섰어야 했다. 여론조사 항목을 만들려면 법안 토론을 거쳐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측 위원들은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무려 3주간 일정 논의를 거부했다. 이때부터 법안 논의는 완전히 실종된 것이다. 그리고나서 여론조사를 하자고 하니, 한나라당 측 위원들 내에서 최대한 민주당 측 위원들의 의견을 수용하고자 했던 사람들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공식 활동 자체에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미디어위가 반드시 무용지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껏 주로 미디어 관련 토론회가 일방적으로 한쪽 편향의 사람들로 구성된 반면 미디어위에서는 어쨌든 양 진영의 인사들이 110일 간 강제소통을 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공식 회의 이외의 자리에서 폭넓은 인식의 교감을 하기도 했다.

    현재 이념과 진영으로 갈기갈기 찟긴 한국사회에 소통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미디어위 위원들은 110일 간 소통의 경험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7월 21일 미디어위의 각 정당 추천위원들은 미디어위의 평가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미디어위는 끝났지만 미디어위의 소통의 가치는 작은 불씨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