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에서 김대중 씨 다음으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는 노조입니다. “노조”하면 우선 “투쟁”이라고 쓴 붉은 머리 수건, 붉은 어깨띠 등을 연상하게 됩니다.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래 위로 흔들면서, 비통한 표정으로,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를 외치며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전투가”를 합창하는 그들을 보면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국민은 우선 섬짓합니다. 금시 무슨 큰 변란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서 서민들의 가슴에는 불안한 느낌이 앞섭니다.

    자본주의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하여는 노동자들의 힘의 집결체인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산업전선의 앞줄에 서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땀을 흘려가며 부의 창출에 모든 것을 바치는 근로자들을, 돈에 눈이 어두운 악덕 기업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노조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사회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노조 때문에 망하는 기업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노조가 나서서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사회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노조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선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조의 시위·파업이 법의 제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18세기와 20세기 초의 미국 노동운동의 거성이었던 새뮤엘 곰퍼즈는 미국노동조합연맹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엄중 경고하였습니다. “사회주의적인 과격한 운동은 절대 금물이다. 노동자의 목표는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임을 더 받고, 보다 큰 자유를 누리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의 그런 주장이 미국의 산업을 육성하고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시인합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과격한 파업, 법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난 파업이 결국 나라 전체의 산업을 위축시키고 사회의 불안 내지는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노동조합 자체가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 어느 특정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조합의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노조원이 선거전에 투입되는 일은 없습니다. 폴란드의 바웬사가 노조를 이끌고 그의 조국을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에 성공한 것은 역사에 두 번 다시 있기 어려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은 오늘 이만큼 잘살게 되었습니다. 생산의 일선을 담당한 노동자들의 공이 큽니다. 그러나 노동자만의 업적은 아닙니다. 공장을 만들고 자금을 끌어들여 사업을 크게 일으킨 기업가의 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노·사가 협력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가 흠모하는 위대한 나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국민이 노조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는 위대한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