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버트 멧캘프 ⓒ 조선일보 사진DB 
    ▲ 로버트 멧캘프 ⓒ 조선일보 사진DB 

    "그린 비즈니스는 '거품(bubble)'이 확실합니다. 왜냐고요? 앨 고어(Gore·전 부통령)가 등장했으니까요."

    지난 10일 오전 미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 대강당은 청중들의 웃음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스마트 그리드 콘퍼런스인 '컨넥티비티 위크'의 사흘째 행사 기조연설자로 나서 내로라하는 학자·엔지니어·기업가들을 휘어잡은 이 남자는 로버트 멧캘프(Metcalfe·63). 근거리통신망(LAN)의 표준인 이서넷(Ethernet)의 발명자이자 네트워크 기업 3Com을 창업한 백만장자다. 멧캘프의 이서넷은 고어 전 부통령의 '정보 고속도로' 정책과 함께 미국 IT혁명의 기반이었다. 그는 "IT 거품을 만든 것이 고어 전 부통령과 나다. 하지만 거품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인터넷 기술에도 많은 거품이 있었어요. 메모리, 저장장치, 무선기술, PC, 브라우저, 전자상거래…. 위험해도 숙고를 거쳐 나온 거품은 기술 혁신을 가속화합니다."

    멧캘프는 스마트 그리드를 포함한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인터넷에 빗대 '에너넷(Enernet)'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스마트 그리드는 인터넷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이 표준과 핵심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탈중심화되고 ▲비획일적이고 저장가능하며 ▲광역 네트워킹보다 근거리 네트워킹에 집중한 기술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멧캘프는 "인류는 머지않아 트랜지스터나 월드와이드웹처럼 에너지와 기후 변화 문제를 단박에 풀어줄 '묘책(silver bullets)'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인터넷 시대에 그랬듯 대학교수와 학생들, 대학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젊은이들이 이런 묘책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산타클라라=이태훈 조선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