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내내 우리 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일들에 매달렸다. 그의 부패 혐의에 대한 검찰의 조사와 잇달아 나온 새로운 증거들은 마침내 그의 투신자살로 이어졌다. 충격은 당연히 컸지만, 경건한 국민장을 통해서 시민들은 그를 추모했다. 애도는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아물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특히 자살은, 한 사람에 관한 문제들을 깔끔하게 푸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이제 그에 관한 모든 혐의는 묻힐 터이다. 그런 풍토가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을 떠나서, 그의 장례식으로 그에 관한 문제들이 일단 정리된 것은 다행스럽다. 새로운 달이 시작된 지금, 우리는 과거가 된 그의 일을 뒤로하고 새로운 일들을 맞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이명박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지금 그가 이끄는 정권은 겹으로 포위된 처지다. 나라 안에선 그를 공격하는 세력이 기세를 올리고, 밖에선 북한의 압력이 점점 커진다. 이렇게 적들로 둘러싸인 정권은 지도자가 앞장서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포위를 뚫는다는 적극적 자세로 나라를 이끌려면, 물론 민심이 따라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많은 사람의 마음은 이 대통령을 떠났다. 그리고 갈 곳 몰라 떠돌고 있다.

    이런 사정은 이미 김수환 추기경과 장영희 교수에 대한 추모에서 드러났다. 두 분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분들이어서, 많은 사람이 애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을 추모하는 마음의 물살은 예상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떠도는 민심을 다시 보여주었다. 그가 풍운아의 면모를 지녀서 열정적 지지자들이 많았다는 점과 그의 비극적 최후가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움직였다는 점만으로는 그렇게 거센 감정의 분출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원래 이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의 마음이 그를 떠났다는 사실을 더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집권한 정치 지도자에게 머물렀을 마음들이 갈 곳 모른 채 떠도는 것은 온 사회에 불행하고 위험하다. 그것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서 떠도는 자금과 성격이 비슷하다. 기업들에 투자되어 생산에 쓰여야 하는데 투자할 만한 곳이 없어서 부동산과 금융 시장에서 떠도는 자금은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낳을 수 있어서,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의 선택을 제약한다. 지도자의 정치적 자산이 되어 사회를 활기차게 만들었어야 할 민심이 먹장구름으로 떠돌면서,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의 꿈자리가 어지럽다.

    이 대통령이 떠도는 마음들을 잡으려면, 먼저 마음들이 머물 곳을 마련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대통령은 호소력이 작은 지도자다. 열렬한 지지자들을 지녔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두는 능력이 작다.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이 깃들 곳을 마련하는 데 늘 마음을 써야 한다.

    당장 시도해야 할 일은 마비된 거대 여당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좋든 싫든, 여당은 대통령이 시민들을 만나는 창구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일도 여당을 활기차게 만드는 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은 박근혜 의원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실은 그것이 핵심이다. 하도 많이 거론되어서 이젠 식상한 얘기지만, 두 지도자의 협력은 지금 정국을 풀어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그것은 떠도는 마음들을 붙잡는 일에서도 필수적이다.

    사람들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더라도, 우리 마음은 흐뭇해진다. 생물계의 기본 질서는 협력이다. 협력하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협력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늘린다. 살아남으려면, 남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 몸도 협력을 통해서 진화했고 문명과 사회도 협력의 산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잘 협력하는 천성을 지녔다. 생물학자들이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라 부르는 이 천성 덕분에 우리는 서로 돕고 협력해서 큰 이익을 얻어 나눈다. 당연히, 우리는 지도자들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과 박 의원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영합경기(zero-sum game)라 여겼고, 당장의 이익을 더 얻기 위해 다투었다. 그들은 나라를 잘 다스린다는 더할 나위 없이 큰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영합경기(non-zero-sum game)를 하지 못했다. 시민들은 그 사실을 잘 알았고 그들의 행태에 크게 실망했다.

    지금 이 대통령에게서 떠난 마음들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은 두 지도자가 활짝 웃으면서 협력을 다짐하는 사진 한 장이다. 아, 얼마나 쉬운가, 그리고 어려운가, 좋은 사진 한 장을 찍는 일은.  [조선일보 시론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