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북한의 핵실험 성공 여부나 규모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지만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어떻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두 차례나 핵실험이 가능했는지는 관심 밖의 일로 치부되고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인권유린이나 방사능 오염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선 지난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시행된 북한 핵실험은 그 자체가 재앙 덩어리로 볼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이나 불모지가 없는, 한반도와 같은 좁은 땅덩어리에서의 핵실험은 방사능 누출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규모가 미약했던 1차 지하 핵실험을 실시할 당시 북한은 3개월 전부터 길주역을 봉쇄하고 양강도와 길주를 오가는 기차까지 운행을 중단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러한 통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길주 지역은 물론 함북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주민들은 평소와 똑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핵실험을 맞게 된 것이다.
핵실험을 하는데도 인근 주민들조차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비밀이 완벽하게 보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해발 2000m의 만탑산(萬塔山)은 백두산과 더불어 인적이 드문 원시림과 같은 곳이다. 그런 깊은 산속 골짜기 밑에 방대한 지하핵실험장을 건설하려면 막대한 인력과 자금이 소요된다.
하지만 일반 북한주민들 가운데 지하 핵실험장 건설에 참가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1994년도 함북 회령에 있는 정치범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했던 안명철씨의 증언이 유일하다. 안씨는 "1990년 초부터 함북도에 집결돼 있었던 회령·종성·화성 수용소의 정치범 가운데 젊은 청년들을 뽑아 만탑산에 끌어가 지하 갱도작업을 했었는데 그 지하 갱도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다"고 말했다.
정치범들은 만탑산에 끌려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한다. 한번 끌려가면 살아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하핵실험장으로 이용하는 만탑산 바로 북쪽엔 북한에서도 16호 관리소로 유명한 화성 정치범수용소가 있다. 이곳에는 정치범 가운데서도 고위층과 그 가족들이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인민무력부장이었던 김창봉씨나 남로당 고위간부들의 가족들도 화성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문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핵실험장과 정치범 수용소가 잇닿아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정치범 출신 탈북자들은 십중팔구 지하핵실험장 건설에 정치범들이 동원됐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위험한 공사장에 정치범들을 활용한 것은 비밀도 아니기 때문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90년 중반, 전병호 군수담당비서가 "신형 무기를 개발했는데 실험을 위해 개를 몇 마리 준비했다"고 하자 김정일은 "왜 개를 쓰느냐. 정치범들을 가져다줄 테니 사람에게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자신의 체제와 생각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김정일에게 정치범들은 개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된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 없는 과학분야는 핵물리학과라고 한다. 이 분야를 전공하면 꼼짝없이 영변 '분강지구'로 들어가 통제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실한 관리와 기술 부족으로 방사능에 오염돼 시름시름 죽어가는 분강지구 사람들이 늘어나 과학자들에게는 항상 공포의 지역이다.
1차 핵실험을 끝낸 이후 2차 핵실험 준비를 하자면 방사능에 오염된 깊은 지하 속에 누군가가 들어가야 하며 이런 일을 처리할 사람들은 정치범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모든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일이 풍계리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