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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전국 법원의 소장 법관들이 연일 회의를 열면서 신 대법관을 성토하더니 21일에는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들마저 회의를 열어 비슷한 결론을 냈다고 한다. 박시환 대법관은 이 이번 사태가 “제5의 사법파동”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 핵심은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광우병촛불시위 사건의 조속한 재판진행을 촉구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몇몇 단독판사들이 야간시위를 금지한 집시법의 규정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하면서 재판을 중단했는데, 위헌제청을 하지 않은 다른 단독판사들도 재판을 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법원장이 재판을 진행하라고 촉구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위헌제청하지 아니한 사건은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법원장의 지적 내용 자체는 타당하다.
문제는 이러한 지적이 재판에 대한 간섭이 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법원장이 판사들에게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였다고 재판에 대한 간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정 사건의 진행을 재촉한 경우에는 좀 다르다. 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대하여 조속한 재판의 진행을 촉구한 것은 법관의 독립에 대한 침해의 소지가 있고, 그래서 대법원 윤리위원회가 경고를 건의하고 대법원장이 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법관들이 모여서 이번 사태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은 없다. 말 그대로 법관들의 소통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아가 신 대법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관은 헌법에 의하여 신분이 보장되고, 오직 형벌이나 탄핵에 의해서만 사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장법관들이 명시적으로 신 대법관의 퇴진을 요구하지는 아니하였지만 그러한 의미의 의사를 집단으로 발표한 것은 누구보다도 법을 존중하여야 하는 법관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논란에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야당이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공언하기에 이르렀고, 여당은 신 대법관이 아니라 박 대법관이 탄핵대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여당의 탄핵소추 운운은 공포탄으로 보이지만, 야당은 공포탄이 아닌 듯하여 걱정스럽다. 만약 야당이 탄핵소추를 시도한다면,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야당은 집권을 포기했다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결론은 대통령이 비록 법을 어겼지만 탄핵감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대법관의 행위도 탄핵감은 아니다. 신대법관의 ‘간섭’은 재판의 진행에 관한 것이지 내용에 관한 것은 아니므로 탄핵당할 만큼 중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야당이 탄핵소추를 추진한다면 법원을 상대로 정치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고, 이는 국민으로부터 역풍을 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보이는 상태에서 이러한 치명적인 악수를 두고서야 어찌 재집권을 꿈꿀 수 있겠는가.
그런데 소장법관들의 태도를 보면서 법관의 양심에 대해 다소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은 듯하다. 헌법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양심이 법관 개인의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적 양심을 말한다. 얼마 전 어느 법관이 불법촛불시위가담자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다가 “나도 법복만 입지 않았으면 피고인의 자리에...” 운운한 사례에서 개인의 양심과 법관의 양심을 혼동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법관이 개인적으로 광우병촛불시위를 열렬하게 지지한다 하더라도 그 시위의 과정에서 법을 어긴 사람에 대하여는 법과 직업상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재판해야 하는 것이 법관의 양심에 부합하는 일이다.
특히 박시환 대법관의 발언을 보면서 이러한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박 대법관은 “판사들에게 절차와 규정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는데 4·19와 6월 항쟁도 절차와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지금이 혁명상황이라도 된다는 말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소장 법관들에 대한 선동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신 대법관이 아니라 박 대법관이 탄핵대상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법관들이 그런 터무니 없는 선동에 동조할 리는 없고 보면, 별로 위험하지 않은 선동일 터이니 탄핵 사유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 하겠다.
이쯤 해서 사태를 마무리 하자. 시국사범에 대하여 정권이 주문한대로 판결한다는 속칭 ‘쪽지재판’이라는 말이 나돈 게 채 20년도 안 된 과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재판진행을 재촉하였다고 재판에 대한 간섭이라고 나라가 들끓을 정도로 법관의 독립이 보장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 이쯤해서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는 신대법관에게 맡기고 각자 할 일들이나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