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비평하는 사람은 어떨까 궁금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평론하는 것처럼 성격과 얼굴에도 날이 서있지는 않을까? 지난 7일 홍대 부근 사무실에서 만난 백건영 ‘네오이마주’ 편집장은 그런 모든 예상을 깬 부드러운 남자였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철학은 분명한 사람이었다.

    -네오이마주는 흔치 않은 영화 전문 웹진이다. 언제 처음 시작했나.

    2005년 창간호를 냈다. 당시 네이버 등 블로그를 통해 영화 비평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숨은 비평가들이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많은 영화평들을 담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많지만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평론은 누가 주로 올리나.

    글을 올리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10여 명 정도의 영화감독 지망생, 영화 기자 지망생 등 스태프들이 있지만 일반 독자회원도 회원으로 가입하면 얼마든지 평론을 올릴 수 있다. 독자들이 올린 영화 비평은 80%정도가 채택된다. 비문이나 통일된 관점이 아닐 때 약간 수정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정을 거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글을 올리다보면 통일된 방향을 잡기 어려울 것 같다. 네오이마주가 추구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나.

    처음엔 모든 영화에 대해 비평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업영화보다는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영화는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많지만 독립영화는 워낙 보는 사람도 적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경우 역시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상업영화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 비평을 중심으로 편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편집방향을 바꾸니 독자 회원들도 점점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을 올리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모임은 얼마나 자주 갖나.

    45일에 한 번 정도 갖는다. 발제자를 한 명 정해서 발제자가 원하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발제자가 좋아하는 감독을 주제로 잡을 수도 있고 평소 관심 있었던 주제를 잡아서 해도 된다. 이 시간은 비평적 자산을 얻기 위한 시간이다.

    -영화 평론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영화를 좋아해 영화 비평을 하기 시작했다. 신춘문예 영화평론 분야에 응모한 적이 있는데 최종심사까지 가는 걸 보고 나도 영화평을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 누구나 비평을 할 수 있지만 가장 어려운 것도 비평이다. 비평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영화 웹진을 운영하는 이유는?

    대부분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프리뷰가 나오고 영화 개봉 후 관련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다가 영화가 내리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다. 최근 영화 ‘박쥐’가 화제 되고 있지만 5월 말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개봉하면 ‘박쥐’는 사람들 기억 속에 잊혀질 거다. 영화의 수명이 너무 짧아졌다. 하지만 영화 비평은 막이 내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의 수명을 길게 하기 위해 영화 웹진을 운영한다.

    -네오이마주는 하루에 방문객 수가 얼마나 되나?

    정확한 방문자 수를 모른다. 한 번도 카운트 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느냐보다 독립영화에 대한 이러한 영화 비평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 ▲ 백건영 '네오이마주' 편집장
    ▲ 백건영 '네오이마주' 편집장

    -상업영화보다는 고전이나 독립영화, 제 3세계 영화 등을 많이 비평하는 것 같다.

    영화비평은 개념을 잡아주는 거다. 상업영화의 경우 이미 개념이 다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답이 뻔하게 나와있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의 경우 당시의 영화 개념이 지금도 이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비평할 가치가 있다

    -최근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역시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다. 삶보다는 죽음의 이미지가 많은데 죽음을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두 사람이 자살하는 장면이나 상현(송강호)이 태주(김옥빈)에게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도와줘. 너처럼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지 않아”라고 자기를 합리화 하는 부분 등은 죽음에 대해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다.

    나머지 등장 인물들, 한복집 주인 라여사나 마작을 하러 오는 오아시스 회원들 모두 인간적인 면이 없다. 거장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잘 다루어야 하는데 인간이 결여된 영화에서 죽음마저도 너무 가볍게 다뤄진 것 같아 아쉽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는데  분위기는 어땠나.

    너무 짧게 있다 와서 현장 분위기는 자세히 알 지 못한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디지털, 독립영화에 집중하면서 부산, 부천국제영화제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10년동안 이어오면서 본래의 취지를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영화제다. 작은 영화를 발견한 예도 많았고, 동남아 중동 동구권 영화 등 제 3세계 영화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국내에 국제영화제가 많은데 국제영화제가 한국 영화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나.

    인도의 경우 영화 제작율이 높아도 국제영화제가 하나도 없다. 국제영화제 하나를 개최하면 그만큼 인프라가 많이 형성된다. 한국영화가 산업화되는 시점과 맞물려 국제영화제가 시작돼 한국 영화산업발전에 오랜시간 걸릴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단축시켰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독립영화 지원을 위해 ‘독립영화 전용관’을 확대한다는데.

    독립영화 전용관이 많아진다고 해서 영화를 관객들이 많이 보는 건 아니다. 영화가 걸려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무조건 인프라를 늘리기보다 시나리오는 있는데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는 영화를 좀 더 지원해줬으면 한다. 상영관에 걸린다고 다 영화는 아니다. 우선 만들어지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영화산업이 발전하려면 나라의 문화적 정서가 같이 성장해야 한다. 창의적 사고를 키울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갖춰져야하고, 사회 정서가 뒷받침돼야 한다. 박찬욱 감독이 결국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한국 사람임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두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도 그 나라의 정서이고, 문화적 토양이다. 갇혀있고 획일화된 사고 방식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네오이마주'는 올해 6월 오프라인 발간을 앞두고 있다. 한 독립영화 배급사에 제안을 했는데 뜻밖에도 흔쾌히 지원을 허락했다. 앞으로 다양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 한국영화에 대한 진단 등의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상업성과 대중의 기대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네오이마주'가 얼마나 한국영화계에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