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어딜 가려고 나가보니 내 차가 밤새 누군가에 의해 찌익 긁히고 라이트박스가 깨져 있다. 아마 운전 미숙자가 긁어놓고 그냥 달아난 것 같았다. 기분이 참 찝찝했다. 수리를 하려고 알아보니 견적이 30만~40만원이 나온다. 돈이 아까워서 그냥 끌고 다니다가 길가에서 차를 고치는 소위 얌외(일본어 야미라는 비속어로 뒷거래의 의미) 아저씨를 만났다. 그 아저씨는 8만원에 고쳐주겠다고 한다. 정상가보다 훨씬 싼 가격이니 당장 고치라고 했다.

    공장에서 하는 게 아니고 한적한 언덕배기에서 판을 벌렸다. 공기 압력기로 뽑아내고 두드려 패고 락카 스프레이를 분사하는데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비를 맞으니 작업이 안돼 다음에 하자는 걸 ‘또 오기 귀찮으니 어디 비 안 맞는데 있으면 거기 가서 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럼 다리 밑으로 가자’고 하여 그 아저씨는 앞장서고 난 뒤 따라갔다. 신호등 하나 건너고 불과 100~200 미터나 갔을까 한데 앞 차가 급정거를 한다. 나도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나는 무사히 섰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뒤에서 ‘쾅!’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뒤차가 내 차를 박은 것이다. 아뿔사! 사고란 게 이렇게 나는구나.

    차에서 내리니 내 차 박은 아저씨도 내린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는데 난 잘못한 것 없으니 큰소리 쳐도 되겠지만 그냥 내 차 살펴보고 그 아저씨 쳐다봤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미끄러져서 결국 박았습니다. 보험처리 할 테니까 일단 차 한 쪽으로 빼시죠“ 그의 태도가 공손했다. 그래서 차를 노견으로 이동하고 본격적으로 합의를 했다.

    “공장으로 가시죠?” 
    이 말에 내 앞에 제일 먼저 급정거 한 얌외 아저씨가 자기가 원인제공자라는 걸 인지해서인지 ”아, 이거 그냥 10만 원만 주시고 가세요“ 
    “아니 10만원 가지고 고칠 수 있단 말인가요?” 
    그 때 내가 “적당히 고칠 테니까 걱정 마시고 가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진짜 10만원만 받는 건가요?”

    한 시간 후 쯤 내 차 박은 아저씨가 근무하는 회사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입금했습니다. 아침부터 불미스런 일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요. 뭐 운전하다 보면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한나절 꼬박 서서 얌외 아저씨 차 고치는 거 들여다보느라 도서관 가려던 계획은 틀렸지만 차는 그야말로 싼 값으로 말짱하게 고쳤고 한 달 후 또 한 번 A·S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왔다. 

    차를 안 박은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사고처리가 원만하게 돼서 다행이다 싶다.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이번엔 사고 낸 봉고 아저씨가 또 전화를 했다.
    “차 고치셨나요?”
    “아, 네. 고쳤습니다.”
    “그 값에~ 아 정말 다행이네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당연한 거지만 ‘거 참 예의 바른 사람이고 그 회사 사장도 바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몸을 다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만 교통사고가 처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도에 보니까 우리나라가 교통사고로 인한 가짜 환자가 제일 많다고 하던데 그 비용은 고스란히 보험으로 처리될 거고 그러면 결국엔 보험료는 인상되는 악순환이 아닌가. 천만 자가용 시대 좀 더 젠틀한 교통문화가 정착되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