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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 9·9절 이후 김정일 건강 이상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다양한 설들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김정일 이후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김정일 유고가 급변 사태로 이어지면 한반도는 구한말 혼란과 일제식민지화, 해방 직후에 이어 세 번째 대격변기로 빠져들 수도 있다. 때문에 김정일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과 유비무환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햇볕론자들은 김정일 이후 대비책을 마련하는 문제가 몹시 못마땅한 모양이다. 특히 그들의 불만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의 수립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의 논리는 한미 '작계 5029'가 중국의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햇볕론자들의 국제 정세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 재확인할 수 있다. 햇볕론자들 주장대로 중국의 반발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작계 5029' 수립을 유보해야 한다면 과연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한국과 미국의 반발이 두려워 중국판 '작계 5029 수립'을 유보할까?
'작계 5029'란 김정일 유고 후 북한에 변란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한 실행 계획이다. 만약 북한에 내전이 발생한다면? 대량 탈북이 발생하여 보트 피플이 몰려온다면? 핵무기, 생화학 무기가 밀반출된다면? 현재 한국과 미국은 이 모든 가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대비책이 없다. '개념 계획'(CONPLAN 5029)만 있지 실제 집행 계획이 없다. 이 계획은 진작 마련했어야 할 것을 노무현 정부가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90년대 중·후반 이미 대량 탈북을 경험한 바 있다. 북한에 변란이 발생할 경우 가장 영향을 크게 받는 나라가 중국임이 입증된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아무런 대비책을 짜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국가 운영의 기본도 모르는 것이다. 다만 중국은 한국과 달리 언론 통제 사회이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물론 북한 급변 사태 시 중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상도 우리들 계획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만약 햇볕론자들의 말대로 한다면 계획이 없는 한국은 속수무책이고 북한의 미래는 중국이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한반도의 운명을 중국에 갖다 바치자는 것이다.
햇볕론자들 이야기 중 경청할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가장 훌륭한 대비책은 "북한 민심을 장악하는 것이다"는 주장을 했다. 백번 옳은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론이다.
정 전 장관은 북한 민심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폭적 대북 식량 지원이라며 철 지난 '퍼주기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북한에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햇볕정책 10년간 분배투명성 없는 '묻지마 식량 지원'은 권력자에게만 혜택을 주었다. 때문에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성을 샀다.
사실 햇볕정책 10년은 북한 주민의 민심을 한국으로부터 이반시킨 10년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한국과 북한 주민을 연결해왔던 유일한 통로인 대북 라디오 방송을 무력화시켰다. 또, 북한 인권만 이야기하면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북한 주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최근 북한 급변 사태 논란을 둘러싼 햇볕론자들의 주장은 그들이 얼마나 아마추어이며 무대책인지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집권하고 있을 때 김정일 유고 상황이 발생했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