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 '포럼'에 이재교 변호사가 쓴 <'대선 불복'으로 변질되는 촛불시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5월 초 ‘광우병 시위’가 처음 시작될 즈음, 어느 토론 프로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10대 여중생들이 광우병으로 죽기 싫다고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사태를 얘기하는 자리였다. 토론에 나온 좌파지식인들은 10대의 정치 참여니 인터넷 문화의 한 단계 진화니 하면서 10대의 촛불을 찬양했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세대인 줄 알았더니 나라 걱정도 할 줄 안다”면서 대견하게 여겼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인사와 언론은 10대들의 ‘성숙한’ 정치 의식과 행동력을 분석하고 찬양·고무·격려하느라 바빴다. 어른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겁에 질린 나이 어린 학생들을 달래기는커녕 격려하는 것이었다. 10대 자식을 둔 부모의 눈으로 보기에는 10대가 공포에 질려 거리에 나선 것이 분명했음에도 좌파인사들은 그랬다. 10대의 힘이라도 빌려 대선 패배의 무력감을 벗어나려는 것으로 비쳤다.

    이런 격려(?)에도 불구하고 10대들은 촛불집회에서 급격하게 사라졌다. 공포에 의한 패닉이 오래 갈 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인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들던 이명박 정부가 이젠 검역 주권을 팔아먹고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쇠고기를 수입하려 한다고 화를 내면서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좌파지식인들은 반색을 하면서 역시 시위를 부추겼다. 그러나 이런 부추김 장단에 춤추는 시민은 별로 없는 듯했다. 그들은 좌파의 선봉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불신과 광우병에 대한 걱정 탓에 거리로 나온 근대적 의미의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시위대의 분노에 놀란 대통령과 정부는 민심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고, 미국과 추가 협상을 시도하는 등 민심수습에 나섰다. 그런데 오히려 이때부터 정권 퇴진 구호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광우병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듯한 기미가 보일 즈음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음이 분명했다.

    지난 대선에서 정권을 잃은 세력, 이명박 후보를 탐탁잖게 여기던 세력, 그들이 광우병 시위의 성격을 변질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분은 이해된다. 좌파는 지난해 대선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했다. BBK 한 방에 모든 것을 걸었으나 헛방이었다. 허탈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세 좋게 출발한 이 정부가 인수위 때부터 발걸음이 엉키기 시작하더니 각료 인선에서 비틀대다가 쇠고기 협상에서 완전히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참에 정권 퇴진을 밀어붙이자는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취임한 지 몇 달 안 된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주장은 도대체 뭔가. 헌법에도 어디에서도 없는 일이다. 비록 기각됐을지언정 4년 전의 탄핵은 헌법으로 보장된 제도였다. 그럼에도 2004년에 ‘탄핵은 쿠데타’라고 외쳤던 그 세력이 이제는 헌법에도 없는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중잣대도 이런 이중잣대가 없고,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면 대선불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과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민주화의 주역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이 지금 쿠데타를 하자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민들이 광우병을 걱정하여 켜든 촛불을 이용해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찌해보겠다는 것인데, 비겁하기도 하거니와 반(反)민주적인 행태의 극치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순수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바로 그 시민들이 정권 퇴진을 외치는 세력에게 촛불을 치켜들어야 한다. 광우병보다 더 위험한 반민주 세력을 규탄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광우병 시위’를 계속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