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을 지새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녘 거리를 걸어 본 적이 있나요? 어두운 거리,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청소부 아저씨의 빗자루 소리, 신문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5시 31분 발 지하철 첫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 소리. 해가 뜨기 전 카메라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설레임, 기대감, 초조함… 아마도 그 모든 마음이 담겨져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철 역에 도착하니 혼자가 아니었다. 이른 새벽 바쁘게 집을 나와 낯선 장소, 어떤 목적을 갖고 떠나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지하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라 생각했던 그 사람은 그들과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고, 잠시 동안 함께 여행을 떠난다. 지하철이 경적을 울리며 도착하고, 다 함께 지하철 문을 향해 걸어간다. 텅빈 지하철 의자에 앉는다. 서로 시선을 마주친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소리 없는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새벽 지하철 여행은 시작된다.

    MP3로 음악을 듣는 남자. 잠시 졸음이 몰려온다. 새우잠을 자던 남자는 눈을 뜬다. 다음 역이 남자의 목적지라는 지하철 안내 멘트와 LCD창에 글씨가 새겨진다. 남자는 하품을 한다. 서서히 의자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간다. 문 앞 창문을 통해 남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남자는 그 모습에 잠시 시선을 멈춘다. 문이 열린다.

    계단을 올라고 출구를 찾는다. 출구를 발견하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다시 내려간다. 목적지가 표시된 푯말을 찾다 발견한다. 그 푯말에 적힌 방향 표시를 보고 걸어간다. 한 참 가다가 또 다른 푯말이 다른 방향을 가르켜 그 방향으로 또 다시 걸어간다. 건널목에 도착한다. 건널목 건너편에 목적지가 흐릿하게 보인다. 파란불이 켜지고 건널목을 건너 목적지에 도착한다.

    아직 어둠이 조금 남아 있다. 일출은 7시가 넘어야 뜨기 때문이다. 목적지 '서울숲' 에 도착한다. 새벽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빠른 발걸음으로 내 앞으로 스쳐 지나간다. 남자는 카메라를 꺼낸다.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한다. 어둠 속에서 사진을 찍는다. 아직 어두워 자연적인 빛이 부족하지만 그 순간의 모습을 촬영한다. 그렇게 숲을 걸으며 셔터를 누른다.

    시간은 흘러 해가 서서히 떠오른다. 숲 구석구석 해가 비추며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숲의 모습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남자가 상상했던 숲의 다양한 모습들이 눈 앞에 펼쳐지며 남자는 감탄한다. 남자의 상상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꽃, 나무, 조각, 풀, 물 등 숲의 모든 생명체가 햇빛을 받으며 기지개를 하는듯한 모습이다.

    숲을 걷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 같은 소리가 들린다. 새가 나무에서 지저귀는 소리였다. 그 새는 다른 나무로, 하늘로 날개를 퍼떡이며 날아간다. 생태의 숲이란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꽃사슴을 발견하는 남자. 신기한 눈으로 꽃사슴을 바라본다. 꽃사슴도 남자의 발자욱 소리가 들렸는지,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와 꽃사슴이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숲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멋진 다리가 나온다. 계단을 올라 다리를 걷는다. 다리의 끝으로 다가갈수록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다. 다리의 끝에 도착하니, 한강이 보인다. 그 곳에는 서울숲의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유람선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아침 햇살이 강의 이곳저곳을 비추어 물 위에서 반짝 거렸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시원한 강 바람도 불어와 걷다 지친 남자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강을 뒤로 하고 오던 길로 다시 향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게 당연한 이치겠지.
    하지만 때로는 잊고 싶은 기억들이 떠올라.
    너무나 좋았던 추억들이 발목을 잡고 지치게 하거든.
    이런 아픔마저도 봄이 내게 주는 선물.

    - 박성빈의 그리우면 떠나라 '봄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