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배움의 길은 시작된다. '엄마', '아빠' 라는 말을 처음 배우고, 숫자와 한글을 배운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사회라는 또 다른 세상을 하나씩 배워 나간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 인간의 도리와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깨닫게된다. 그렇게 끝없이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 인간의 세상에 태어난 이유다.
구름에 닿을듯 말듯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아파트. 인간이 생활하기 편리한 공간으로 꾸민 집이다. 옛 우리의 조상들은 1000년이 흘러 아파트와 같은 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님을 모시는 불교의 상징 '탑'. 탑은 원래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stūpa)와 팔리어의 투파(thūpa)를 한자로 음역(音譯)한 것이다. 따라서 탑파(塔婆)라는 말의 시원이기도 하다. 탑은 쉽게 말하여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이다.
서울의 작은 동네, 성북구 보문동에 약 1000년이 된 탑이 있다. 아파트 숲길 사이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미타사' 에 그 탑이 있다. 미타사 가는 길 입구에 작은 안내 표시판이 있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 이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동안 걷자 한옥이 희미하게 보였다. 저 곳이 미타사일까. 한옥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무런 인기척은 없었다. 문 끝에 미타사의 유래에 관한 안내글이 있었다.
'미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950년 고려 광종때 혜거(慧居)가 창건하였다. 1047년 문종때 오층석탑을 조성하고, 1314년 충숙왕때 혜감(慧鑑) 국사 만항(萬沆)이 중수하였다. 1457년 조선 세조때에는 단종(端宗)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영월로 귀양간 뒤 매일 이 부근에 있는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단종을 그리워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836년 헌종 2년에 비구니 상심(常心)이 인일(仁一)의 도움을 받아 중수하였다.
1969년 비구니 계주(季珠)가 고봉(古峰)의 도움으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관음전, 단하각(丹霞閣) 등이 있고, 유물로는 1047년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다. 대웅전 내에는 1863년 철종때 제작된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으며, 삼성각 내에는 1874년 고종때 제작된 칠성탱화와 1915년 제작된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문 안쪽으로 살며시 한 발짝, 한 발짝 조용히 들어갔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남자 한 명이 돌 계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계단으로 올라갔다. 잠시 스치듯 눈이 마주치고.... 혹시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일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안.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경내에는 그 남자와 나 이외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고요한 절의 풍경이었다.
돌 계단을 올라가 절의 건축을 살펴보다가 마당에서 돌 안에 있는 물을 발견했다. 혹시 약수일까하고 마셔보았다. 물은 시원했다. 그리고 또 계단이 나왔다. 그런데 아까 본 남자가 계단 위 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면서 "1000년 된 탑이 있습니다"라고 한 마디하고 지나쳤다. 나는 "네…"라고 짧은 대답을 했다. 너무 조용한 절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 뭐라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고 올라… 드디어 오래된 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렇게 높은 탑은 아니었지만, 오래되어서 그런지 녹색의 이끼가 탑에서 자라서 수북했다. 그리고 탑 주위에 동자승 등의 조각을 누군가 두고 갔다. 아마도 탑에 절을 하고 두고 간 것 같다.
나도 탑을 눈으로 직접 보니 마음이 경건해지고 마음 속에서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머무르기만 했다.
탑에서 내려다본 동네의 풍경은 현대와 과거의 시간이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아파트와 절. 그리고 1000년의 시간.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라고 하는데, 1000년의 긴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탑처럼, 인간도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존재할 수는 없을까.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또 변해도...
미타사에서의 짧다면 짧은 시간은 지혜로움과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