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지나고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에도 봄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어둡고 탁한 공기의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와 지상으로 나왔다. 하늘은 하얀 구름과 따뜻한 햇살이 몸과 마음을 상쾌하고 따뜻하게 해주었다. 거리와 골목에는 기나긴 겨울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힘찬 발걸음과 활기에 넘치는 소리들이 들렸다. 매일 지나면서 한 번씩 스치듯 보는 꽃 가게에는 봄 소식을 전하는듯 다양한 꽃과 식물들을 가게 앞에 진열해놓아 가게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향기로운 꽃 내음과 기분 좋은 미소를 선사한다.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지고 흐뭇한 마음으로 꽃 가게를 지나 저만치 보이는 다리로 향한다. 그리고 다리 앞에 도착해 잠시 풍경을 감상한다. 그러다가 다리 옆 길에 핀 노란 꽃을 발견한다. 며칠 전까지도 보이지 않았던 꽃이다. 멀리서 무슨 꽃인지 알 수 없어 가까히 가 보기로 한다. 노란 꽃이 점점 가까워 지고… 그 꽃은 '개나리' 였다.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개나리 꽃이었다.

    노란 개나리 꽃이 다리를 중심으로 저 멀리 다리의 끝까지 피어 있었다. 멋진 봄 날의 풍경이었다. 비록 산이나 들에서 다른 꽃과 식물들과 함께 피지는 못한 하천에 핀 꽃이지만, 그 어떤 아름다운 꽃 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안암동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맞는 봄. 그리고 처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개나리꽃, 이름 모를 풀까지. 그 어느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개나리 꽃 이외에 다리 건너편 놀이터 길에 아직 피지 않은 벚꽃의 꽃봉오리가 봄 날의 햇살과 봄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아카시아길이라는 골목을 지나다가 어느 집 마당에 핀 새 하얀 목련이 보였다. 그 집 뿐 아니라 그 옆 집에도 피어 있었다. 두 집이 함께 목련의 씨앗을 심었을까. 나란히 핀 목련꽃이 마치 두 집의 인연을 연결해주는 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련은 다양한 이름이 있는데,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 '옥수', 옥 같은 꽃에 난초 같은 향기 '옥란',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했다고 '북향화'라는 이름이 있다. 내 마음도 하얀 목련처럼 순수함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시련을 딛고 핀 꽃은 아름다우나
    정작 그 꽃은 시련을 자랑하지 않듯
    이 아침 내가 서 있는 작은 곳을
    어떻게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어 놓을까를 생각합니다.

    저기 햇살에 달여옵니다.
    양지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는 꽃과 달리
    봄이 와도 찬바람 불어오는 쪽을 향해
    의연히 서 있는 목련처럼
    꽃눈 내밀 때의 첫마음으로 돌아가

    -도종환 시인 '십년' 中-